2025년 12월 20일(토)

독립운동가들 등쳐먹고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 동상'이 굳건히 서 있는 학교 5곳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오늘은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해다.


100년 전 뜨겁게 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중에서는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


반면 친일파들의 후손은 그때 축적한 부로 대대손손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또 '위대한 사람'으로 칭송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 여전히 우리나라 곳곳의 많은 학교에 친일파의 동상이 당당히 세워져 있다.


'부끄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몫이다. 많은 학생이 동상 철거를 요구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에도 친일 행위자들에 대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 개탄하며, 지금까지도 친일파 동상을 교정에 세워둔 학교들을 모아봤다.


1. 고려대·중앙중고 - 김성수


인사이트인촌 김성수(1891~1955) / 인촌기념회 공식 홈페이지, (우) 온라인 커뮤니티


인촌 김성수는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해방 후인 1946년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1962년 '건국 공로훈장'을 받으며 언론, 교육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인촌이 징병과 학병을 찬양하는 선동 글을 기고하고,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친일단체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이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이에 2017년 대법원은 인촌의 친일 행위를 인정했고 정부가 그의 서훈을 박탈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려대 본관 앞에는 인촌 동상이 세워져 있다.


2. 이화여자대학교 - 김활란


인사이트뉴스1


이화여자대학교의 설립자 김활란은 1930년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조선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딴 엘리트였다.


하지만 김활란은 1936년 12월 친일단체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서 상무이사를 맡으며 친일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며 부녀자들로부터 금비녀와 금반지 등을 받아 국방헌금 명목으로 일제에 전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징병, 일본군 '위안부' 등을 독려했고 학생들에게 한복 대신 교복을 입게 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대생들은 친일파 김활란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지만, 학교 측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3. 추계예대·중앙여중고 - 황신덕 


인사이트(좌) 황신덕, (우) 중앙여자고등학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황신덕은 추계예대와 중앙여중고를 운영하는 사학법인 추계학원의 설립자다.


여성 인권운동가로 알려져 있던 황신덕은 교장직을 맡았을 당시 제자들을 일본군 '위안부'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인사로 분류됐다.


그는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를 맡으며 조선 청년들에게 학도병으로 나설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황신덕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돼 있지만 여전히 추계학원은 황신덕의 이름을 딴 '황신덕 기념관', 호를 딴 '추계콘서트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2000년 추계학원은 친일 문제로 철거됐던 황신덕 흉상을 신축 대학원 건물 앞에 다시 세웠다.


4. 휘문중고·풍문여고 - 민영휘 


인사이트휘문고등학교 홈페이지 


민영휘는 휘문고등학교의 전신 '휘문의숙'의 설립자로 이완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표적인 친일파다.


명성황후 친척 조카이기도 한 민영휘는 1909년 이완용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민연설회 총대위원으로도 참여한다.


특히 조선의 국권 박탈에 앞장섰다는 점을 인정받아 1910년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으면서 일제강점기 최고 갑부가 됐다.


2007년 그는 이러한 행보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됐지만, 휘문고 교정에는 여전히 민영휘 동상이 세워져 있다.


5. 연세대학교 - 백낙준


인사이트(좌)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우) 백낙준 / 연세대학교 박물관 


백낙준은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냈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해 연합된 단체 '조선임전보국단'에서 활동했다.


그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을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한 성전'이라고 홍보하며 청년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독려했다. 또 전쟁용 비행기 헌납 지원단체인 '조선장로교신도 애국기헌납기성회'에서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백낙준은 19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으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뒤늦게 포함됐지만, 여전히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묻혀 있으며, 연세대학교에서도 버젓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