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일)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입니다"···누리꾼들 울먹이게 한 딸의 글

인사이트Facebook 'Heejung Lim'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나는 한글조차 익숙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잘 자라 아나운서가 됐다"


지난 1일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을 좌우명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브런치'에는 임희정 전 아나운서의 글 한편이 게재됐다. 


임 전 아나운서는 이 글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을 인용해 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난 용'이라기보다는 '개천에서 난'에 방점을 찍은 용이라고 설명했다.


집이 가난하더라도 피나는 노력을 하면 원하는 꿈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는 속담이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는 뜻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뮤직비디오 '당신의 지갑에는 얼마의 사랑이 있나요'


임 아나운서에 따르면 1948년생인 아버지는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하고 50년 넘게 막노동을 이어왔다.


아버지보다 4년 늦게 태어난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10대 때부터 삼시 세끼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가사 노동을 시작해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을 '10년 차 아나운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왜 그 글을 썼는지, 진짜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임 아나운서는 "사람들은 (나를) 아나운서라는 내 직업 하나만 보고 당연히 번듯한 집안에서 부모의 지원도 잘 받아 성장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피노키오'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에 "건설 쪽 일을 하시는데요"라고 말하면 어느새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됐다.


또 아버지의 출신 대학을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대졸자가 됐다. 


순간순간 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임 아나운서는 구태여 진실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는 "기준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도 잘못됐지만, 그 기대치에 맞춰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나의 마침표도 잘못됐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그 틀에 맞춰 아버지와 어머니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나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피노키오'


임 아나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며 "아나운서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고, 막노동도 변변치 않은 직업이 절대 아님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자책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막노동하는 아버지 아래서 잘 자란 아나운서 딸', '한글조차 익숙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말을 업으로 삼는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이어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체득한 삶에 대한 경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님이었다"며 "사랑을 채워주고 응원해준 덕분에 내 삶을 허투루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의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결코 마음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모는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데 좌절하지 않고,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목숨 걸고 생을 바쳐 딸을 키운 것이라는 사실을 임 아나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피노키오'


"저분들의 자식들도 내가 했던 것처럼 부모를 감추었을까?"


길 거리를 걷던 임 아나운서가 공사 현장에서 노동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 속에 응어리처럼 생기는 질문이었다.  


임 아나운서의 자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위로받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모두의 부모가 존중받기를 바란다"


그는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낸 부모의 생,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말하며 글을 마쳤다.


자신의 몸 속에 있던 응어리를 덜어내는 임 아나운서의 글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는 선에서 끝나도 됐지만,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갈등하는 이들을 응원하려는 임 아나운서의 용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해당 글의 전문이다.


나는 개천에서 난 용이다. 내가 '잘난 용'이라는 것이 아니라, 방점은 '개천에서 난'에 찍고 싶다.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뜻의 속담, 부모가 빈궁한 생활을 했다 해도 피나는 노력을 하면 원하는 꿈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속담은 딱 나를 설명하는 한 줄이다.


1948년생 아빠는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도 채 다니지 못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밭일, 동네 소일거리... 그러다 몸이 커지고 어른이 되자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일당을 쳐주었던 건설현장에서의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 일은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52년생 엄마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8남매의 장녀였고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10대의 나이에 자식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엄마 역할을 해야 했고, 집안일과 가족들 뒷바라지를 해왔다. 삼시 세끼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가사 노동. 그 일도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84년생 딸인 나는 대학원 공부까지 했다. 10년 차 아나운서이고 방송도 하고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20대에 직장 이직을 여러 번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세 군데를 다녔고, 사내 아나운서로 시작해 지역 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라디오 DJ를 하고 있고 내 능력치만큼의 일도 하고 돈도 벌며 잘 살고 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며 사람들은 내 직업 하나만을 보고 당연히 번듯한 집안에서 잘 자란 사람, 부모의 지원도 잘 받아 성장한 아이로 생각했다. 그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오곤 했다. 내가 "건설 쪽 일을 하시는데요" 하고 운을 떼자마자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됐고, 어느 대학을 나오셨냐 물어오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대졸자가 됐다. 부모를 물어오는 질문 앞에서 나는 거짓과 참 그 어느 것도 아닌 대답을 할 때가 많았다.


기준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도 잘못됐지만, 그 기대치에 맞춰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나의 마침표도 잘못됐다. 겉모습을 보고 '이럴 것이다'라는 틀을 씌우는 생각들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범하는 가장 큰 결례가 아닐까.


보통의 무례 속에 우리는 서로에게 잘못된 질문과 답을 하며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도 그 틀에 맞춰 아버지와 어머니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나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내 부모의 배경을 남들에게 다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말 못 할 이유도 없었는데, 그 말이 참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방송국 PD여서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를 꿈꿨다는 친구, 의사인 아버지가 '너는 말을 잘하니 아나운서가 되어보면 어떻겠냐'며 일찍이 방향을 정해줬다는 친구, 부모님의 지원 아래 유명 브랜드의 정장과 고가의 숍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친구. 그들 옆에 선 나는 '형편에 맞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내 불안해하며 20대 아나운서 준비생 시절을 보냈다.

꿈에는 형편이 없는데, 친구들의 아버지가 맞고 내 아버지가 틀린 것이 결코 아닌데, 그들 기준에 맞춰 비교하며 나는 빨간펜을 들고 나 스스로 잘못된 채점을 했다. 그것은 애초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였고, 문제도 아니었다.


부모의 시절과 나의 시대는 아주 달라서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원망도 창피함도 되어서는 안 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막노동이 변변치 않은 직업도 절대 아님을 나도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 아래서 잘 자란 아나운서 딸이다. 한글조차 익숙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말을 업으로 삼는 아나운서가 됐다. 내가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배우며, 알게 모르게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驚異)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도 부모였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이 부족한 만큼 사랑을 채워 나를 돌봐주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나를 대견해했고,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 주었다. 물질적 지원보다 심적 사랑과 응원이 한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뒷받침이 된다. 나는 그것을 잘 알았으므로, 내 앞에 놓인 삶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여유가 없던 부모의 인생에 나는 목숨을 걸고 생을 바쳐 키워낸 딸이었다.


길거리를 걷다 공사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나는 속으로 생각이 든다.


'저분들에게도 번듯한 아들이, 잘 자란 딸들이 있겠지?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내가 했던 것처럼 부모를 감추었을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고 싶다. 평생 막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며 키운 딸이 아나운서가 되어 그들의 삶을 말과 글로 옮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생도 인정받고 위로받길 바란다. 무엇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모두의 부모가 존중받길 바란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낸 부모의 생,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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