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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상징 故 김복동 할머니 운구가 옛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났다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27년째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 중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됐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인사이트] 석태진 기자 =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1일 오전 6시 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는 故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됐다.


장례식장을 떠난 운구차는 그의 생전 흔적이 남아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다.


김 할머니가 머물던 방. 그가 수요 시위 때 입던 옷. 함께 진상 규명을 외치던 다른 피해자 할머니들을 차례로 지났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마지막 인사를 나눈 운구차는 오전 8시 30분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배상금 1천억원을 줘도 합의 안 합니다. 하루빨리 해결을 지으라고 일본 정부에 전하세요. 알겠습니까?"


서울광장에는 스피커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육성이 울려 퍼졌다. 현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어 장례 행렬은 광화문과 안국역을 지나 27년째 수요집회가 진행 중인 옛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했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이곳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리는 장소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영결식은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 온 장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일본군 노예 책임자 처벌' 등 추모 문구가 적힌 만장 94개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추모객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전 10시 30분부터는 본격적인 김 할머니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판소리 공연을 시작으로 묵념과 추모 영상 상영, 할머니 소개, 추모사, 헌화가 순서대로 진행됐고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차는 충남 천안에 위치한 장지로 떠났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한편 김복동 할머니는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다.


이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닌 김 할머니는 1992년 피해 사실을 공개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수많은 피해자의 상징이 돼왔다.


지난해 암 판정을 받은 김복동 할머니는 1월 28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