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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이 너한테 취했는지 숙취가 길다"…누리꾼들 울린 어느 남성의 글

사랑하는 이를 아무 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어느 남성이 남긴 글이 보는 이들까지 울리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남자친구'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안녕,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사랑하던 이와 헤어졌다. 


헤어짐은 상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던 건지, 그저 마음이 식은 건지, 아니면 관계에 지친 건지 그는 영영 알 수가 없었다.


떠나는 상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그는 차마 당사자에게는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적어 내려갔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남자친구'


"헤어진 뒤 사람답지 못하게 살았어. 극심한 불면증에 밥이라도 먹으면 토했고, 눈을 감으면 네가 보였고 눈을 뜨면 네 사진만 뒤적거렸지"


글을 게재한 그는 헤어진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억지로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히 그의 눈앞에는 페브리즈를 들고 자신의 자취방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던 상대의 모습이, 자다가 코까지 살짝 골며 잠꼬대하던 모습이, 빨래를 제때 널지 않았다고 구박하던 모습들이 아른거렸다.


그의 이별은 너무나 더웠던 여름밤에 있었다. 글을 쓰던 이 날은 너무나 추운 겨울밤이었다. 머지않아 다시 더워질 터였고 또 추위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때에도 그는 추억 속에 살겠다고 했다. 보물찾기하듯,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길을 걷다가 튀어나오는 추억들이 좋았다. 웃으면서 만날 수 있던 상대는 없으나 상대가 남긴 추억은 아직 여기 남았기에.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남자친구'


상대방이 자신의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에서야 그는 고백했다.


"생각보다 많이 너한테 취했는지 숙취가 길다"


혹자는 "안녕"이라는 말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나 건네는 경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건네는 경우, 정말 "안녕"일 때 하는 경우.


그는 글 처음에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넸으나 사실 그 의미는 마지막 안녕일 것이었다.


아래 해당 글 전문이다. 몇 년 전 전 처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며 지금까지 회자되는 글쓴이 미상의 이 절절한 글은 많은 누리꾼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남자친구'


안녕.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튼 나쁜 X, 잘 지내냐. 우선 취직은 축하한다(진심으로). 헤어진 지 2주일 만에 다른 남자 만난 건 진심으로 저주해줄께ㅋㅋㅋㅋㅋ

남자답지 못하게 인터넷에 글이나 끄적이는 아직 난 찌질이야ㅋㅋㅋㅋㅋ


그냥 오늘따라 널 잠깐 보고 와서 그런지 생각이 많이 나네 심하게

항상 넌 내가 게으른 모습과 나태해진 모습이 싫다고 했지. 사실 네가 더 나태했어, 12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면서ㅡㅡ

학기 중엔 내가 너무 힘드니까 방학 땐 사실 나태해지기도 했어. 넌 학기 중에도 나태했지ㅡㅡ


그렇다고 그렇게 2년이나 사귄 걸 그렇게 쉽게 떠날진 몰랐다. 너 망해라!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넌 그냥 매정한 X이지. 알았냐? 반성해라.


헤어진 뒤 사람답지 못하게 살았어.

술만 마셨고, 학교도 안 나갔고, 술을 안 마시면 잠도 못 잘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에 밥이라도 먹으면 토했고, 눈을 감으면 네가 보였고 눈을 뜨면 네 사진만 뒤적거렸지.

그렇게 4개월쯤 지났지? 억지로라도 다른 사람 만나라고 친구들이 그렇게 강추하더라. 사람 잊는 데는 그것만 한 게 없다고.

귀가 A4보다 얇은 나는 그런가 싶었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사실 나 같은 똥차에 앉고 싶어 할 수도 있는 사람이 있었어.

돈도 많고 똑똑하고 직장인에 성격이 착하기도, 이쁘기까지 한 괜찮은 사람이었지.

재밌기까지ㅋㅋㅋㅋㅋㅋ비율이 캬~ 키도 작으면서 어좁이에 머리도 좀 컸잖냐 넌ㅋㅋㅋㅋㅋㅋㅋㅋ 너랑은 비교도 안 돼 짜샤.

영화도 봤고 데이트도 했고 썸 같은 걸 타보기도 했지. 나보고 재밌대. 내 유일한 매력인 거 알지?

색다른 기분이었지. 안 마시던 아메리카노도 배워보고 와인도 먹어보고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했지.


꼬맹이였던 내가 막 어른같이 굴게 되더라고. 어찌나 애살은 많은지 시험 기간이라고 기프티콘도 보내주더라. 너는 절대 못 하던 것. 쯧쯧 반성해라.

잘될 것 같았어 얘랑. 잘 될 수 있었을 거야.


근데 내가 XX 병X인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설레더라.

걔랑 걷는 반짝거리고 이쁜 거리도 너랑 걷던 후지고 냄새나던 골목길만큼 안 좋더라.

너를 처음 봤을 때처럼 내 작은 눈이 커지지도 않았고, 두근거리지도, 설레지도 않더라.

전화를 2시간 넘게 하던 너랑은 달리 10분을 넘기기도 힘들게 지겨웠던 통화와

카톡 한 통 한 통에 엄지 저릴 정도로 정성을 담았던 너랑은 달리 그냥 와있으면 하고 없으면 없었던 카톡,

그냥 내 옆에 있던 여자는 좋은 여자일 뿐, 거기까지더라.

내가 미친 X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년 동안 집도 가까이 살면서 매일매일 보던 그렇게 지겨웠던 너한테 느껴지던 감정이 안 느껴지더라.


그래서 그냥 관뒀어.

간간히 들어오는 소개팅도, 금요일마다 나가자는 친구들도, 억지로라도 가보던 클럽도 다 그만뒀어. 부질없더라고. 억지로 잊으려고 해도 안 잊히는 걸.


아직도 내 화장실에는 네가 페브리즈를 들고 볼일을 볼 것 같고, 자다가 잠꼬대하는 모습도 보이고, 집에 와서 빨래 돌리고 안 널었다고 구박하던 네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주인공을 꼭 같이 따라 하던 우리와, 감자탕을 뼈까지 쪽쪽 빨아먹고 손가락까지 빨아먹던 네가, 파스타보다 추어탕을 좋아하던 네가 아직은 아른거리네.


너무나 더웠던 여름밤에 헤어졌고, 지금은 너무나 추운 겨울이야.

언젠간 다시 더워질 거고, 다시 추워진대도


난 그냥 아직은 추억 속에 살래. 500원씩 모아서 먹던 라면도, 소방서 앞에서 뛰어놀던 26살과 23살도. 돈이 없어도 편하게 웃으면서 만날 수 있던 너는 없지만,

네가 남긴 추억은 남았으니까 아직은 여기 살래.

버리지 못한 네 사진도 찢지도 못한 네 편지도

그냥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살다가 언젠가 내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때, 그땐 네가 말한 친구로 만나자.


찌질해 보이는 건 인정할게.

근데 불쌍하게 보거나 동정하지는 마. 내가 선택한 거니깐 뭐.

그냥 보물찾기하듯이 길을 걷다가 두더지처럼 튀어나오는 추억들이 좋아 난.

언젠간 나 같은 똥차에 앉아줄 여자가 있겠지만, 아직은 내 똥차엔 네가 가득하네.


나보다 키 작은 지금 남자친구도, 나보다 재미도 없다던 그 남자친구랑

잘 지내지도 말고 잘 못 지내지도 말았으면 한다.


나는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솔직히 후회하지)

돌아오라는 것도 아냐(아니 돌아와)

그냥 두서없이 끄적이는 이 글이 돌고 돌아 언젠간 네가 유일하게 하는 여초 사이트에 넘어가서 이 글을 본다면 한 번 그냥 피식해라. 새끼 아직도 찌질하네, 라고.


생각보다 많이 너한테 취했는지 숙취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