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토)

평생 일본과 싸워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 생전 어록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이경은 기자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지난 28일 오후 10시 41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내며 위안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머니는 생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 무려 26년간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하라', '배상하라'며 쉬지 않고 외쳐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란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갔다. 


이후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당한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가 되던 해에야 귀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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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위안부의 아픔을 잘 알았던 그는 생전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은 보듬는데 힘썼다. 김 할머니는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암 판정을 받은 후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는 순간에도 그의 외침은 멈출 줄 몰랐다.


김 할머니는 장기가 쇠약해져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박동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본에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 외에도 다양한 평화 인권 운동과 기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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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만나며 성폭력 피해자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지난 2016년부터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어 일본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도왔고, 지난해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재일조선학교 복구를 위해 기부금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쏟아내며 부디 마지막 가는 길에는 아픔 없이 편안함만이 가득하길 바라고 있다.


한편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