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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맥도날드'는 맥도날드 형제 아닌 '밀크셰이크 영업사원'이 만들어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창업주인 맥도날드 형제가 아닌 영업사원 레이 크록이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영업사원에 경영권·상표권 등 넘기고 떠난 맥도날드 형제


[인사이트] 김유진 기자 =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세계 각지에 매장을 두고 있어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맥도날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맥도날드 형제가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형제는 맥도날드의 성공까지는 함께하지 못했다. 오히려 맥도날드 형제가 떠난 뒤 맥도날드는 세계적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딕 맥도날드와 마크 맥도날드는 극장으로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만 맛보고 고민하던 중 극장 앞 핫도그 노점을 발견한다. 극장보다 더 장사가 잘되는 핫도그 매장을 보고 맥도날드 형제도 1937년 '에어드롬'이라는 핫도그 매장을 열었다.


에어드롬은 당시 유행하던 '드라이브 스루' 레스토랑으로 간편한 외식 문화를 지향했다.


장사가 잘되자 맥도날드 형제는 샌버너디노 지역으로 매장을 확장 이전했다. 이곳에 세운 '맥도날드 바비큐'는 핫도그와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셰이크 등을 판매하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으로 10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인사이트맥도날드 형제


하지만 이 매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기를 맞이했고, 고민하던 맥도날드 형제는 가게 운영 방식을 바꿔 오늘날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춘 '맥도날드'를 세웠다.


형제는 맥도날드 비비큐의 인기 메뉴 9가지만 팔기로 하고 기존의 식기 대신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나이프와 포크, 컵을 들여와 간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맥도날드의 주방 시스템은 업계를 뒤흔들었다. 직원들이 공장 조립 방식으로 움직이며 매번 똑같은 맛과 모양으로 음식을 완성했다. 새로운 주방 시스템 덕분에 음식을 제공하는 속도도 빨라졌고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미국서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시키고 해외 진출까지 


이러한 기세를 몰아 맥도날드는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당시 여러 분점을 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됐다.


이때 맥도날드 매장에 방문한 밀크셰이크 기계 영업 사원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의 혁신적인 운영 방식을 보고 반해 전국적인 사업을 계획한다. 그는 맥도날드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인물이기도 하다.


맥도날드 형제를 설득해 프랜차이즈 경영권을 따낸 레이 크록은 본격적으로 전국에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한다. 


약 5년 만에 100개 매장 오픈을 이끌어 낸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사업 전권을 넘겨받는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로열티와 상표권까지 포기하며 맥도날드 형제가 받은 돈은 270만 달러였다. 


이를 현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0억원 수준으로 지난 2017년 기준 맥도날드 매출 41조원과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다.


경영권을 완전히 손에 넣은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의 상징적인 'M'자 로고를 만드는 등 다양한 요소들을 도입하고 해외 진출도 성공시키면서 맥도날드를 세계 1위 햄버거 브랜드로 키웠다.


맥도날드가 레이 크록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맥도날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