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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재산 팔아 일본으로부터 '훈민정음' 지켜낸 문화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시절 간송 전형필 선생은 30억원에 이르는 자신의 자산을 지불하고 '훈민정음해례본'을 지켜냈다.

인사이트간송 전형필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서울 갑부 집안에 막내아들이었던 전형필 선생은 25살에 막대한 부를 상속받고 조선 최대의 지주가 된다.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일찍 돌아가신 탓이었다. 


당시는 우리의 민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이 나날이 가혹해질 때였다. 갑부가 된 전형필 선생이 적절히 일제와 타협하고 산다면 편안한 삶은 보장돼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국내외 곳곳에 감춰져 있던 우리의 문화재를 사들였고,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가 사들인 문화재 중 하나였다.  


인사이트훈민정음 해례본 /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시 일본은 해례본을 없앰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뿌리와 기원을 흔들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간송 전형필 선생은 수소문 끝에 조선 출신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례본을 가지고 있는 자를 일본보다 먼저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해례본을 얻기 위해 소유자를 찾아낸 그는 "1천원에 판매하겠다"라는 판매자의 말에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서 10배의 값을 치렀다.


이때 선생이 건넨 1만원이라는 금액은 요즘으로 치면 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었고,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해례본은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인사이트MBC '서프라이즈'


사실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글에 창제 원리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혹자는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나 산스크리트어에서 따왔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갑골문자를 모방했다고도 했다.


해례본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한글이 다른 나라의 문자를 모방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형필 선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 한글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인사이트MBC '서프라이즈'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건 한글만이 아니다. 그는 신윤복, 정선, 김정희의 회화와 고려 시대 청자 등 다양한 문화재를 사들여 지금까지 지켜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했고, 이는 오늘날 간송미술관으로 이어졌다. 


간송미술관 현재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 그리고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4점 등 수천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 중이다. 


오늘은(25일)은 우리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준 전형필 선생이 별세한 날이다. 오늘만이라도 그의 뜻을 기려 한글과 우리 문화의 높은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