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토)

간첩 누명 쓰고 고문에 감옥살이까지 한 80대 할아버지, 무죄 판결 직전 숨졌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일명 '만년필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던 80대 할아버지가 무죄판결을 앞두고 숨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18일 제주지법 형사 2단독 황미정 판사는 고 김태주(81) 할아버지의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이 반국가단체나 국외의 공산계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만년필 등 물품을 받았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형사소송법 제 325조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시에서 태어나 마을의 '농사개량 구락부'회장을 맡았던 김 할아버지는 북제주에서 가장 먼저 감귤 농사를 성공시킨 인물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Flickr


28세가 되던 1967년 4월, 제주에서 10명 만을 선발하는 '농업과수 연수생'으로 선발된 김 할아버지는 일본 후쿠요카 현의 구루메시 감귤 농가에서 3개월간 농업 연수를 받았다.


연수 후에는 오사카에 있는 친척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김 할아버지가 제주에 돌아오기 전 오사카에서 조선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친척에게 받은 만년필이 당시 북한에서 추진 중이던 '천리마 운동'의 성공을 찬양하는 선전용 만년필이었던 것이다.


1968년 제주 경찰서로 연행된 김 할아버지는 10여 일 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허위 자백을 하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이 과정에서 일본 체류 당시 조총련의 오사카 지도원이었던 다른 친척으로부터 중고 양복 1벌을 받은 것이 밝혀져 관련 혐의가 추가됐다.


결국 그 해 7월, 김 할아버지는 '북괴가 소위 천리마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 만년필과 조총련 지도원에게 양복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연수를 받을 때 단벌이어서 친척이 자신이 입던 양복을 하나 준 것이고, 만년필도 마음적으로 선물을 한 것뿐인데 반공법으로 처벌받는 것은 억울하다"면서 항소를 제기했지만 기각되고 말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김 할아버지는 모친의 사망 소식도 감옥에서 들어야만 했다.


반세기 동안 한을 갖고 살아온 김 할아버지는 지난 2015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3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번 재판에서 김 할아버지의 변호를 맡은 이명춘 변호사는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지만 당시 고문을 받은 사실이 적시되지 않아 향후 김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구금됐던 시간을 보상하는 '형사보상'과 더불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