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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열단 김상옥 의사가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23년 1월 12일은 의열단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날이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23년 1월 12일 밤, 서울 종로경찰서에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원인은 폭탄이었다. 


그날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이는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이었던 김상옥 의사다.


1890년 서울 종로구 효제동 가난한 한 가정에서 출생한 김상옥 의사는 8살부터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도왔다.


17세가 될 무렵, 기독교에 입교한 그는 동대문 교회 부설 신군야학교에 들어가 주경야독에 힘썼다.


김상옥 의사는 야학에 다니면서 대한광복단을 결성하고, 당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에 대항해 국산품 장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사이트위키백과


전국 각지에서 "대한 독립 만세"가 뜨겁게 울려 퍼진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김상옥 의사는 청년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 혁신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는 '혁신공보'를 발행하는 등 평화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옥 의사는 평화적 독립운동이 갖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무력 투쟁에 의한 독립 쟁취를 결심한다.


1920년 11월에는 중국 상하이로 향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신익희, 이동휘, 조소앙 등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22년 10월, 그는 권총 4정과 탄환 800발, 항일문서를 가슴에 품은 채 서울로 돌아와 거사를 계획한다.


인사이트동아일보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그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다. 폭탄이 투척된 건물은 파손됐고 12명의 사람이 중경상을 입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일본 경찰은 열흘에 걸쳐 그를 추적했고, 종로구 효제동에서 의열단원 김상옥이 은신 중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1월 22일 위치가 발각된 김상옥 의사는 일본 경찰에 포위당해 무려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이며 맞선다.


하지만 마지막 탄환 한 발이 남았을 때, 그는 자신이 거사를 계획하기 전 남겼던 말대로 권총을 자신의 가슴에 겨눈다.


그것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상옥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