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토)

"해인사 폭격해라" 명령 불복하고 목숨 걸어 '팔만대장경' 지킨 군인

인사이트YTN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천 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소실되지 않으며 굳건히 우리 얼을 상징한 인류의 유산, 팔만대장경.


13세기에 나무로 제작된 8만여 개의 이 경판은 오늘날에도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고 있다.


그러나 한때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치열하던 1951년이었다. 당시 한국 공군 전투 비행대 소속의 군인,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 일대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적군 토벌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인사이트뉴스1


그러던 김영환 대령에게 상부에서 명령 하나가 떨어진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사찰,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내용이었다.


명령을 들은 김영환 대령은 즉시 자신 아래 전투기들에 그만의 명령을 내린다. "절대 내 명령 없이는 폭탄을 투하하지 마라!!"


우리나라 군형법상 상관의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군인은 최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항명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도 김영환 대령은 즉결처분을 각오하면서까지 폭격 명령을 거부했다.


이후 진술에서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라며 "전쟁으로 이를 파괴할 수는 없었다"고 명령 불복종 이유를 밝혔다.


인사이트YTN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이승만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은 불탈 뻔한 팔만대장경을 지켜내기 위해 명령 불복종을 택한 김영환 대령에 크게 분노하며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총살도 아닌 대포를 쏘아 죽이는 포살을 사형 집행 방식으로 거론하기까지 했으나 김영환 대령은 간신히 즉결처분을 모면한다.


이렇듯 목숨을 걸면서까지 영토는 물론 문화와 민족정신을 지키는 것 또한 국가수호임을 보여준 김영환 대령. 


대령은 98년 전 오늘인 1921년 1월 8일 태어났다. 그러나 숨진 기일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비행기를 몰고 가던 중 악천후로 인해 상공에서 그대로 실종됐기 때문이다. 실종된 해는 1954년. 당시 그의 나이 34세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