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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위생병 대신 쓰러진 군인에게 걸어가는 신부님

군인의 임종을 지켜주고 싶었던 신부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현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인사이트The Pulitzer Prizes


[인사이트] 장형인 기자 =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인 퓰리처상.


지난 1917년 창설된 퓰리처상은 지난 1911년 숨진 헝가리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 조셉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졌다.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퓰리처상을 만든 퓰리처는 생전 "부당함과 부패를 결코 묵인하지 말라. 무엇이든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라"는 메시지를 남긴 바 았다.


퓰리처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매년 4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메시지를 남긴 보도사진을 선정한다.


아래 소개할 사진은 지난 1963년 퓰리처상에 선정된 'Aid of the Padre(신부의 도움)'이라는 작품이다.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


기자 헥터 론든은 지난 1962년 6월 3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카베요라는 곳을 방문했다가 신부 루이스 파딜로와 총에 맞아 죽어가는 군인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는 해군 병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정부군과 해군기지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총알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위급한 상황 속 군종사제 파딜로는 군인의 응급조치를 담당하는 위생병보다도 먼저 죽어가는 군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는 군인을 품에 안아 보호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헥터 론든은 "나는 총에 맞지 않기 위해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신부는 날아오는 총탄이 무섭지 않았는지 부상당한 군인을 향해 걸어갔다"고 전했다.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


이어 "부상당한 군인을 안아 일으키는 장면을 셔터를 누르며 보았다. 신부가 너무 성스러워 보였다"고 설명했다.


자신도 곧 총에 맞고 죽을 수 있었지만 파딜로 신부는 자신의 목숨보다는 군인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파딜로 신부가 정부군 군인을 안아 마지막 기도를 하는 순간에도 반란군의 총알 세례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 상황이 상황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바닥에 떨어진 탄피 수백여 개가 증명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인간애를 보여준 헥터 론든의 이 사진은 이후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성직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파딜로 신부의 모습은 오래된 흑백 사진이지만 여전히 전율이 느껴지며, "존재 그 자체가 전해주는 감동이 느껴진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