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쌍화점'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1374년 10월 27일 (음력 9월 22일).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신하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왕이 있다.
바로 고려의 공민왕이다. 그림과 서예 실력이 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꼽힐 정도로 영명하고 다재다능했던 그.
신하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공민왕은 어쩌다 이런 결말을 맞이했을까.
비극의 시작은 1년 전으로 돌아간다.
영화 '쌍화점'
공민왕은 1373년 10월 1일 고려의 '미소년'들을 한데 모아 '자제위(子弟衛)'라는 집단을 꾸렸다.
여기에는 홍륜(洪倫), 한안(韓安), 권진(權瑨), 홍관(洪寬), 노선(蘆瑄) 등 고려 최고의 꽃미남들이 속해있었다. 이들은 공민왕의 침실에서 항상 함께했다.
즉 자제위는 왕을 위한 남자들이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공민왕은 여색(女色)을 즐기지 않았고 또 여성과 관계도 맺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민왕은 스스로 여성과 같이 화장을 즐겼으며, 여종을 불러들여 자제위 멤버들과 '난잡한 행동'을 하게 하고 이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홍륜 등을 자기 침실로 불러 들여 남색을 즐겼고, 하룻밤에 수십명을 방에 들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화 '쌍화점'
고려사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공민왕은 동성애자였던 것. 공민왕은 그 중에서도 홍륜을 가장 사랑했다.
그런데 자제위를 향한 공민왕의 애정은 비뚤어져 표현됐다. 그는 자신의 왕비와 자제위의 성관계를 강요했다.
이에 대부분의 왕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제위와의 잠자리를 거부했지만 익비(益妃)는 공민왕의 강압에 굴복하고 말았다.
홍륜은 이에 재미가 붙어 어명이라 속이고 익비와 자주 관계를 맺었고, 결국 익비는 홍륜의 아이를 갖게됐다.
영화 '쌍화점'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던 공민왕은 1374년 10월 27일 내시 최만생(崔萬生)에게 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홍륜과 익비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몄다. 아이를 빼앗은 뒤 홍륜의 무리를 모두 죽여 입막음을 할 계획이었던 것.
공민왕은 익비의 임신 소식을 자신에게 전한 최만생에게 자신의 계획을 비밀스럽게 털어놨다.
그리고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만생에게 "너도 이 계획을 알고 있으니 마땅히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아라"라고 경고했다.
영화 '쌍화점'
하지만 이 경고는 공민왕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두려움에 떨던 최만생은 이런 사실을 홍륜 무리에게 모두 전했고, 늘 공민왕의 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그들은 공민왕에게 칼을 휘둘렀다.
만취해 있던 공민왕은 단 한번 저항도 못해보고 벽에 피를 뿌리며 4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영명하고 다재다능했던 공민왕이지만 자신의 잘못된 욕망으로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왕비를 빼앗기고 암살까지 당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