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24살 조선 청년이 일본 왕족에게 '독검'을 던져 암살에 성공했다

인사이트조명하 의사 / EBS 클립뱅크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나는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90년 전인 1928년 오늘(10일) 24세 조선의 젊은 청년 조명하 의사는 대만에서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죄목은 '황족 위해죄'.


1928년 5월 14일 조명하 의사는 대만에 있던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王) 육군 대장에게 독검을 던졌고, 구니노미야는 온몸에 독이 퍼져 사망했다.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가가 벌인 의거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 '왕족'을 처단한 사건이었다.


인사이트구니노미야 구니히코 / wikipedia


1924년 20세였던 조명하 의사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를 보고 큰 감명을 느껴 독립운동에 뜻을 품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아키가와 도미오(明河豊雄)란 가명 아래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뜻을 펼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1927년 중국행 배에 오르게 된다.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해 독립운동에 한 몸 바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상해로 가기에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조명하 의사. 그는 결국 중간 기착지인 대만 타이중시의 한 녹차 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 


조명하 의사는 녹차 밭에서 일하면서도 독립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술과 검술을 연마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인사이트당시 의거가 일어났던 대만 대중 도서관 / EBS 클립뱅크


그러던 중 그에게 기쁜 소식 하나가 도달했다. 


대만에 주둔한 일본군 검열을 위해 일왕의 장인 구니노미야가 대만에 온다는 보도를 접한 것.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 생각한 조명하 의사는 거사를 준비했다. 1928년 5월 14일 독이 묻은 검을 들고 환영식 인파에 섞여 구니노미야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구니노미야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그는 독검을 날렸다. 칼은 구니노미야의 목과 왼쪽 어깨를 스치고 운전사 손에 꽂혔다. 


인사이트조명하 의거 사건을 보도한 일본 신문 / YouTube 'KTV 대한뉴스'


사건 직후 조명하 의사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현장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됐다. 


일본 왕족에게 위해를 가한 일.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조명하 의사는 사형장에서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고 말한 뒤 다음의 말을 이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


조명하 의사가 사형을 당하고 3개월 뒤인 다음 해 1월, 그의 칼을 맞았던 구니노미야는 칼에 찔린 상처에서 패혈증이 생겨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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