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서 패배한 일본군이 독립군에 보복하기 위해 선택한 충격적인 복수법

인사이트봉오동전투 / 문화콘텐츠닷컴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오늘(2일)은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보복 차원으로 이른바 '훈춘 사건'을 일으켜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날이다.


1920년 6월 6일 중국 지린성의 작은 마을 봉오동에서 일본군은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 부대를 만나 157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다.


독립군 연합 부대의 전사자 4명, 일본군에게 있어서 봉오동 전투의 패배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무엇보다 일본군이 놀란 것은 독립군의 규모였다. 1920년 만주 지역의 독립군은 총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일본군은 간도 지방의 불령선인을 토벌한다는 목적으로 1920년 오늘 '훈춘 사건'을 일으켰다.


불령선인은 '불온한 조선 사람'이란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마이웨이'


이때까지도 일본은 중국 지린성 당국의 허락 없이 중국 영토인 간도로 군대를 보낼 수 없었다.


독립군 토벌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은 급기야 간도로 군대를 파견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간도 지방에서 말을 타고 도둑질과 약탈을 일삼는 '마적단'이란 무리를 매수해 중국 훈춘시의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을 파견하려 한 것. 


여기에 일본의 여성 스파이 '야마모토 가꾸꼬'를 마적단 두목의 애첩으로 만드는 등 훈춘시의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인사이트


인사이트1920년 간도 일본군의 만행 /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수순대로 마적단은 훈춘의 일본 관공서를 공격해 '훈춘 사건'을 일으켰다. 


일본은 마적단에 다수의 불령선인이 포함돼 있다고 선전하는 한편, 중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미리 준비된 군대를 훈춘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이어진 학살. 


일본군은 한국인을 심문도 거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이 학살은 이듬해 5월까지 이어져 많은 한국인의 목숨을 빼앗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추산 살해당한 한국인은 3천여 명, 실제로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이트김좌진 장군과 대한 독립군 북로군정서군 / wikimedia


이에 큰 피해가 있었음에도 한국의 이름 모를 수많은 군인은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다.


1920년 10월 일본의 만행이 이뤄지는 가운데,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3천여 명의 대한독립군은 청산리에서 5천여 명의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이 전투가 '청산리 전투'다.


대한독립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400여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승리를 거두며 일본군에게 아직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이 식지 않았음을 분명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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