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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전 오늘은, '군인+민간인' 15명 죽게한 '강릉 무장공비'가 침투한 날입니다"

1996년 9월 18일 북한 무장공비 25명을 강원도 강릉 동해안을 통해 전격 침투했다.

인사이트좌초돼 있던 북한 잠수함 /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이 열리는 오늘(18일), 한반도에는 '평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공식 선언' 등 많은 사람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가 공고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는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김정숙 여사를 영접했다. 북한 주민들은 이례적으로 '파란색 플래카드'를 내걸고 환영 인사를 했다.


인공기와 함께 수많은 한반도기도 나부낀 이 현장에는 '북한군'도 있었다. 북한군은 문 대통령 내외를 직접 사열했고, 북한 군부는 문 대통령에게 예를 표했다.


인사이트뉴스1


북한군은 모두 웃고 있었고, 문 대통령도 이에 미소로 화답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있다는 신호로 보였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지를 생각하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1996년 9월 18일, 22년 전의 오늘은 북한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동해안 일대에 침투한 날이다.


잠수함에 있던 '북한 무장공비'들은 정찰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했으나 잠수함이 그물에 걸려 좌초돼 육지로 나왔다. 이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육군 제68보병사단 초병과 택시기사가 발견해 신고했다.


이 지역에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육군의 '공비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경찰도 혼란스러운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했다.


인사이트'소탕 작전'에 투입되는 군인들 모습 / MBC 뉴스데스크


18일 오후 4시 40분,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 2명이 '정찰국 해상처' 소속 안내조원 이광수를 생포했다. 5시에는 처형된 공비의 시신 11구도 발견됐다.


이광수의 진술을 토대로 침투한 공비들의 인원 상태와 특징을 파악한 육군은 소탕 작전에 속도를 냈다. 육군 최고의 특전사 병력이 상당수 투입됐고, 해군 역시 '특수전전단 병력'을 급파해 도왔다.


경찰청도 전투경찰로 구성된 타격대와 기동대를 투입했고, 파출소 경찰관도 기동복을 입고 M16 자동소통을 휴대한 채 근무했다. 그만큼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다.


본격적인 소탕은 다음날인 19일부터 시작됐다. 오전 10시 공비 3명이 사살됐고, 오후 2시에 또 3명이 사살됐다.


인사이트'소탕 작전'에 투입된 육군 /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2시간 뒤인 4시경, 1명을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남측 전사자 1명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구태여 남한에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때문에 애꿎은 생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21일에는 적 2명을 발견해 대응하던 중 아군 중사 1명이 '두부 관통상'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남측 전사자는 2명이 됐다. 이날 오후 8시쯤, 한 수색중대가 적을 발견하고 교전을 펼쳤다.


이때 적 1명을 사살하기는 했지만, 아군 역시 1명 사망했다. 3명도 큰 부상을 입었다. 공비들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 3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국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애도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9월 30일까지 3명의 적을 처치하는 동안 1명의 아군이 또 죽었다. 이로써 공비 11명을 모두 사살했고, 그 시간 동안 죽은 아군은 5명이었다.


인사이트군사학적 이유로 처형당한 북한군 11명 /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이떄까지 북한 정찰조원 2명만이 살아 있었다. 10월을 넘어 11월까지도 살아있었던 이들은 민간인 3명과 군인 7명을 '더' 죽였다.


그러던 11월 5일 오전 10시 특전사 3여단에게 발각돼 모두 사살됐다. 이로써 '대간첩작전'은 개시 49일 만에 모두 종료됐다.


당시 대한민국 분위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밖으로 나가면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그런 공포 말이다. 비록 사건은 강원도 내로 국한돼 있었지만, 언제든 서울로 공비들이 침투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민들 마음속에 팽배해 있었다.


그 공포는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던 '정찰조 2명'의 수첩 기록이 공개되면서 더 구체화됐다. 당시 군 당국의 분석과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수준의 '이동 루트+행동 방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이트MBC 뉴스데스크


북한측은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훈련 중 기관 고장을 일으켜 표류하다가 좌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전까지는 늘 간첩사건 자체를 부정한 것과는 다르게 사건 자체는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월 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 비서장 접촉에서 북한측은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북한 군부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남한측은 사과하지 않을 경우 모든 대북경협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고, 북한측은 '핵 동결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미국이 중재에 나섰고,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감' 표명을 했다.


인사이트MBC 뉴스데스크


이에 남한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유골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해 사건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위 사건은 한반도 분단 이후 있었던 '대남도발' 중 가장 악랄했던 것으로 남아있으며, 북한 측의 몇 안 되는 사과가 나오기도 한 사건이다.


'대북경협'과 '경수로 지원'도 이뤄져 있던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또한 북한의 '화전양면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이 열리는 오늘, 이러한 과거의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진짜 평화'가 한반도에 깃들 수 있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본다. 


한편 이광수에 따르면 잠수함에 타 있던 인원은 총 25명이었다. 그중 생포된 인원은 이광수 딱 1명이었고,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나머지 11명은 함께 침투한 공비에 의해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