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마지막 '광복군' 할아버지가 대한민국에 날린 뼈아픈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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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채널e'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지금 현재도 친일파 후손들이 전부 있어. 아직도 청산이 안 돼 있어"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마지막 '광복군'은 끝내 이루지 못한 친일파 청산에 목이 메었다.


광복절이었던 지난 15일 EBS '지식채널e'에서는 독립운동가 김우전 선생의 증언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백범 김구의 비서 출신이자 광복군이었던 그는 생존해있는 이 시대 마지막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침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동안 김우전 선생은 젊어선 조선의 독립을 위해, 광복 후엔 독립유공자의 처우를 위해 힘써왔다.


인사이트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광복 73주년을 보름 앞둔 지난달 29일, 제작진이 자택에서 마주한 김우전 선생은 9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백발이 성성했지만 목소리엔 강단이 있었다.


평안북도 정주 오산 출신인 김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향엔 3.1운동 당시 33인 국민대표로 활동했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가 있었다. 그의 형님 역시 독립운동을 했고 일본군에 잡혀가 고문당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숱하게 보고 자랐다.


김 선생은 "독립운동, 민족정기에 관한 그 도가니 속에서 나는 살았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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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21살 때 일본 학병으로 강제징병 된 김 선생은 과감히 탈출을 감행한다. 그 길로 광복군에 합류해 전략첩보부대(OSS)에서 훈련을 받았고,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약했다.


일본 군대에 있을 때 자신과 마찬가지로 함께 탈출한 동지가 있었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김준엽이다.


누군가 의지할 이가 있어 든든했던 김 선생. 그렇다고 그때 당시 독립에 대한 의무를 느낀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김 선생은 독립운동한 사람이 우리나라 민족의 10%도 안 될 거로 추정했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해 조선의 독립을 열망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


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광복 후, 김 선생은 앞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잘 살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권력을 쥔 친일파는 일본이 물러간 후에도 좋은 벼슬을 차지하고 월급도 많이 받았다. 당연히 후손들도 좋은 학교를 나와 승승장구 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권력층에 친일파 후손들이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까다로운 기준 앞에 번번이 독립유공자 심사에 탈락하고,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기록도, 명예도, 훈장도 남지 않은 귀중한 역사들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김 선생은 일생에서 절대 혼자 이룰 수 없는 독립운동의 길이 자신에게 주어져 행운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독립유공자를 외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개탄하며 "억압당했던 36년은 어쩌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라 근래의 일일지도 모른다"고 씁쓸함을 내비친다.


끝나지 않은 고통 앞에, 96세 마지막 '광복군'의 간절한 외침이 더욱 뼈아프게 들려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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