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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 5개월된 아이 품은 채 일제 향해 '폭탄 투척'한 독립투사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이 여인은 조선 독립을 향한 투지를 불태우며 무력 응징을 마다치 않았다.

인사이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미스터 션샤인'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일제 침략자를 섬나라로 철수시킬 방법은 단 하나.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이다"


자식에게 작금의 조선을 물려줄 수 없었던 한 여인은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채 주저 없이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그는 여성 항일투사 안경신이다.


1920년 8월 3일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별안간 폭탄이 터졌다.


타깃이 된건 제국주의 상징이자 일제 통치기관이었던 평남도청, 평양부청, 평양경찰서였다.


당시 미국 의원시찰단의 방한 소식을 듣게 된 광복군은 조선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폭탄 거사를 계획한다.


앞서 안경신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의 핍박이 심해졌고, 안경신은 그때부터 '무력항쟁'만이 독립의 길이라 여겼다.


임신 5개월의 몸으로 폭탄 거사에 참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사이트tvN '프리한 19' 


평남도청에 던진 폭탄은 계획대로 터졌고, 일본 경찰 2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안경신은 그때 평양경찰서 앞에 있었다.


빗물 때문에 도화선에 불이 붙지 않으면서 폭탄이 불발됐고, 안경신은 그 길로 함경남도로 피신한다.


그에게 포기란 없었다. 그곳에서도 안경신은 대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 폭탄 투척을 계획했다.


대한애국부인회 동지 최매지는 안경신을 이렇게 기억한다.


"여성 투쟁가도 수없이 있었다. 그러나 안경신같이 시종일관 무력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죽고 살겠다는 친구는 처음 봤다"


인사이트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숱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번번이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비에 실패로 돌아갔고, 1921년 3월 20일 안경신은 체포됐다.


피신한 곳에서 아들을 낳은 지 채 2주가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갓난 아들을 안고 재판장에 들어선 그는 "조선 사람이 독립운동해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며 재판장을 향해 소리치며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안경신은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징역 10년 형을 받는다.


1927년 12월 안경신이 가석방됐다. 하지만 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곧장 평양의 오빠 집으로 향한 안경신은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어미 품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음식도 못먹고 자란 아들은 눈이 멀어 있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에 안경신은 좌절했다. 여기에 동지 장덕진이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안경신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인사이트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임신한 몸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지를 불태웠던 독립운동가 안경신.


안타깝게도 출옥 후 그의 행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연유에서 종적을 감췄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조선을 향한 그의 절개와 애국, 희생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1962년 정부는 뒤늦게나마 안경신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며 그의 뜻을 기렸다.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한 안경신의 훈장은 현재 국가보훈처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