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토)

일본 핍박에도 한국여성과 결혼해 '조선의 자존심' 지킨 마지막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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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일본으로부터 '독립'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뜨거웠던 73년 전인 1945년 8월 7일.


이날 조선의 마지막 황족 중 한명인 이우 왕자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피폭돼 숨지고 말았다.


이우는 1912년 서울에서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거의 전 생애를 일본의 볼모로만 살다 운명을 달리한 비극적인 삶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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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왕자는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일본군 포병장교로 임명 받았다.


이는 일제가 조선 황족을 일본의 군인으로 임명해 일제 치하의 조선을 정당화하는 홍보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었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조선 황족의 결혼을 통제하며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강요 했으나 이우왕자는 조선 여성 박찬주와 결혼해 조선 황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면서 강제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1945년 6월, 일제는 이우 왕자를 오늘날 중령계급으로 진급시킨 후 본토 결전을 위해 히로시마로 부임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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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왕자는 일본에 가지 않기 위해 전역을 신청하기도 하고 조선 잔류를 청하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는 버티고 버티다 그 해 7월 히로시마 일본군 제2총군 참모본부로 출근하기 시작했고, 피폭 당일에도 출근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출근 도중 사망했다.  


끝내 조선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우왕자는 죽음 이후에도 일본의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그의 혼(魂)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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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희생되고 말았지만 생전 그와 가까이 지냈던 일본인들은 그를 매우 당차고 확고한 신념이 있는 조선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재직 당시 동기생이었던 일본 황족 아사카 다케히코는 "이우는 항상 조선은 독립해야한다는 마음을 새기고 있어 일본인에게 결코 뒤지거나 양보하는 일 없이 무엇이든 앞서려 노력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운현궁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던 가네코란 일본인도 "이우는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 일본 육군에서 두려워했다"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