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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하지 말라는 '롯데라면' 만들었다가 퇴짜당해 '농심' 세운 신춘호 회장

친형이 하지 말라는 라면 사업을 밀어붙여 '롯데라면'을 만들었다가 졸지에 퇴짜 당한 동생은 한국 라면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농심을 세웠다.

장영훈 기자
입력 2018.07.31 19:41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친형이 하지 말라는 라면 사업을 밀어붙여 '롯데라면'을 만들었다가 졸지에 퇴짜 당한 동생이 있다.


'롯데'라는 이름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며 형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동생은 박차고 나가 라면 회사를 차렸고 단숨에 라면 업계 1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꿋꿋하게 라면 사업을 벌여 한국 라면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농심 신춘호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춘호 회장은 일본롯데 부사장과 일본롯데 이사로 근무하던 도중 라면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


1960년대 초반 정부가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혼분식 장려정책'을 펼쳤다.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밀가루나 보리 등 잡곡을 섞어 먹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권장한 것이다.


신춘호 회장은 정부 정책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라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 본격적인 라면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세워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하지만 맏형인 신격호 회장은 동생 신춘호 회장의 라면 사업을 완강하게 반대했고 자신의 허락도 없이 '롯데'라는 사명을 사용한 것에 격하게 분노했다.


결국 이들 형제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고 현재 두 형제는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남남이 되고 말았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 사업 초기 당시 형 신격호 회장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때 생긴 서운한 감정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형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은 신춘호 회장은 형과의 갈등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서기에 나섰고 1978년 롯데공업을 농심으로 바꿨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그동안의 연구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1982년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을 시작으로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등을 차례로 출시했다.


물론 시장 반응은 대박이었다. 해물우동라면 '너구리' 경우 출시 두 달 만에 20억원을 상회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너구리'는 이듬해인 1983년에는 150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우동라면 트렌드를 처음 열었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


뒤이어 출시된 '짜파게티' 역시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 받으며 '짜장라면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 중이다.


또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현재 라면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농심 관계자에 따르면 '신라면'은 신춘호 회장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품명과 광고문구까지 사실상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제품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당시 TV 광고에서 유행했던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라는 광고 문구를 직접 만들었을 정도로 '신라면'에 올인했을 정도다.


그렇게 탄생한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되자마자 가파른 매출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1991년 라면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신라면'은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상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인사이트Instagram 'nana_kkkkk', 'yunhee1138'


신춘호 회장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라면 사업 성공을 발판삼아 스낵시장에도 뛰어들었고 국내 최초 스낵 '새우깡'을 만들게 된다.


'새우깡'이라는 이름 역시 신춘호 회장이 직접 지었다.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이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부인인 신윤경 씨가 어릴 때 '아리랑'을 '아리깡'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이름이었다.


'새우깡' 성공을 계기로 '양파깡'과 '감자깡' 등 히트작을 선보인 농심은 그렇게 라면에 이어 스낵 시장 선두주자가 됐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


오늘날의 농심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맏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라면 사업에 뛰어든 신춘호 회장의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신춘호 회장은 자소전에서 자신에 대해 "내 직업은 장사꾼"이라면서 "평생 라면을 만들어왔으니 라면쟁이요, 또 스낵도 만들어 왔으니 스낵쟁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썼다.


그만큼 신춘호 회장 본인 스스로 국내 식품 선두기업 농심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형으로부터 찬밥 신세를 받아야만 했던 신춘호 회장의 농심은 2015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했고 이제 글로벌 100년 기업으로서 도약에 나서는 중이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농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