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영화 '1987', (우) 영화 '남영동 1985'
[인사이트] 변보경 기자 = 서슬 퍼런 제5공화국 정권 아래에서 지하세계를 호령하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이 지난 6일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87년, 박종철 열사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관들에게 악랄한 물고문을 당하던 중 사망했다.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강민창 전 본부장은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을 단순 쇼크사로 발표해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박 열사 사망 원인 은폐 사건에 대해 "대책회의에서 결정이 난 대로 따랐을 뿐, 나도 피해를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사죄보단 변명이 앞섰던 그의 발언은 전 국민을 들끓게 했고, 그와 함께 권력의 주구(走狗)로 활동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탄압했던 이들에게도 지탄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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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모두 하나 같이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했다. 정권이 바뀌고 진실이 드러났지만 책임을 회피하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악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의 얼굴로 짐승처럼 포효했던 이들은 우리 역사속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고문기술자'라고 불리는 인물은 노덕술, 이근안, 정현근 전 의원이다.
먼저 노덕술은 지난 1948년 장택상 수도경찰청장 저격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박성근을 혐의자로 체포해 조사를 벌인 경찰이다.
당시 수도청 수도과장으로 있었던 노덕술은 곤봉을 휘두르며 자백을 강요했다.
결국, 고문을 버티지 못했던 박성근이 사망하자 노덕술은 시신을 한강에 버리고 도망갔다.
영화 '남영동 1985'
도피 중이던 노덕술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검거됐으나 만성기관지염 등의 이유로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해당 사건은 무죄가 선고되면서 아무 죗값을 치루지 않고 마무리됐다.
다음으로 영화 '남영동 1985' 속 실존인물 이근안은 고문 기술자다. 대통령 훈장을 받으며 초고속 승진을 했을 정도로 화려한 범인 검거 능력을 보유한 이근안.
그는 반인류적인 고문을 하며 민주화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잡아다 강제진술을 받아냈다.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사람은 후유증으로 3년 내 사망한다는 증언이 수두룩할 정도로 물고문, 전기고문, 손톱 고문 등을 피해자에게 직접 가했다.
영화 '남영동 1985'
지난 1988년 김근태 전 의원의 폭로로 이근안의 만행이 공개되면서 불법 체포 및 고문 혐의로 수배가 내려졌다.
잠적한 이근안은 11년이 지나서 스스로 자수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징역을 살다 나온 이근안은 각종 인터뷰에서 자신은 애국자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정형근 전 의원은 과거 고민 피해 사건 담당 검사로 제 15,16,17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에게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은 "무고한 시민을 데려가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 잔인한 고문을 했다"고 증언한다.
영화 '변호인'
피해자들에 따르면 "변기 물을 마시게 했다", "성기고문을 당했다" 등 자백을 할 때까지 수차례 고문을 가했다.
정형근 전 의원은 10차례에 달하는 고문 혐의를 받았으나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가 시민들을 고문한 증거도 수두룩하게 발견됐다. 하지만 법망을 피해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