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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해 목숨바쳐 싸우고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노병

19살에 징집돼 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던 김명수 할아버지는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인사이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샌프란시스코 한국전쟁 기념관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19살 소년병은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전우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총에 맞아가며 목숨 바쳐 싸웠지만 그동안 한글을 몰라 유공자 신청서를 내지 못한 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26일 동아일보는 6.25 참전에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노병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다.


올해 87세인 김명수씨는 전쟁이 터지자 그해 7월 19살 나이에 경주에서 징집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평범한 청년이었던 김씨는 나라에서 준 군복과 달랑 총 하나를 들고 전쟁터로 나섰다. 경주 안강전투,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 금화지구 전투 등에 참전했다고 김씨는 밝혔다.


전우들이 죽어 나가고 자신도 총상을 입으며 나라를 위해 싸운 김씨. 정전 3년 뒤 의병 전역한 그는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김씨는 국가유공자 심사도 받지 못했다. 한글을 모르는 게 화근이었다. 글을 모른다는 부끄러움에 스스로도 관공서 가기를 꺼렸다. 


김씨는 가족들에게도 참전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간직해왔다. 


참전 용사를 입증할 기회를 놓친 김씨는 그렇게 전쟁을 온몸으로 겪고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김씨의 사연을 지난해 처음 알게 된 조카가 국가보훈처를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적증명서가 있어야 유공자 신청이 가능한데, 육군 본부엔 김씨의 이름으로 된 기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


다행히 딸이 군번, 계급 등이 손으로 적힌 김씨의 주민등록표를 발견했지만 육군본부는 역시나 내부 기록이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여전히 몸엔 총알이 스쳐 간 흔적이 선명하고 머릿속엔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김씨는 자신의 참전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김씨. 김씨 가족들은 모든 기억이 사라지기 전 꼭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청년 시절의 희생을 보상받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인사이트뉴스1


이와 관련 인사이트 취재진은 국가보훈처에 김씨처럼 기록이 없어 유공자 등록이 어려운 참전 용사들의 처우와 향후 등록 방안에 대해 물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병적증명서, 병적기록표 등 병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있어야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군인으로 참전한 것으로 추정되나 병적을 확인할 수 없을 경우 귀향증, 사진 등 증빙자료와 본인 및 보증인 진술을 종합해 심의하여 참전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