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기념사업회
[인사이트] 최해리 기자 = "오늘은 다시 살아나는 날, 내가 우리가 되는 날이어야 한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교문 앞에는 군사정권에 억울하게 희생된 故 박종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맞서 싸우러 나온 청년들로 가득하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청년들과 이를 제지하는 전경 간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연세대생 이한열 역시 학생 2천여명과 함께 연세대 정문으로 나섰다.
네이선 벤
전경들은 학생들을 삼면으로 에워싸고 무자비하게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이때 전경이 던진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그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정신 잃고 쓰러진 이한열은 곁에 있던 친구에 부축을 받으며 끌려갔다.
이 장면은 사진으로 포착됐고,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독재 타도를 외친 이한열의 마지막 사진 한 장은 전 국민적 분노로 번져 전국을 뒤흔들었다.
이한열 기념사업회
이한열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각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시민들은 22살 어린 학생에게 일어난 비극에 또 한번 분노했다.
이한열의 희생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약 100만명의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군부 독재를 타도했다.
결국 성난 민심 앞에 전두환 군사 정권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며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한열은 그토록 열망해왔던 '민주화' 시대를 보지 못한 채 7월 5일 새벽녘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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