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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전재산 독립운동에 쓰고 정작 본인들은 '굶어 죽은' 6형제

우당 6형제는 시가 600억원에 달하는 가산을 처분해 전부 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인사이트영화 '암살' / 네이버 영화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이거 몸으로 하는거 아니에요. 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이는 친일파 암살작전을 그린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 속사포 역을 맡은 조진웅이 했던 대사다.


부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가 이토록 '신흥무관학교' 출신임을 강조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이유가 있었다.


졸업생만 3,500여명을 배출하며 독립운동에 이바지 했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들은 20세기 조선의 최상위 재벌가문의 자제들인 '우당 6형제'다.


인사이트우당 6형제의 만주 서간도 망명 논의 / 서울시


당시 명동을 지나려면 우당 6형제 가문 소유의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특히 여섯 형제 중 넷째인 이회영 선생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를 중심으로 모든 형제들과 우당 일가족 40여명은 가산을 전부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했다.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이 1996년 펴낸 자서전에서도 "여러 집이 일시에 급매하다 보니 제 값을 받을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때 마련한 돈은 40여만원, 시가로 '600억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인사이트신흥무관학교 기념사진 / 국가보훈처


이처럼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준비한 거금으로 이회영 형제가 설립한 것이 독립군의 자부심이자 항일 무장 투쟁의 토대가 된 신흥무관학교다.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충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등으로 활약한 김좌진, 이범석, 이청천 장군도 이곳을 거쳐갔을 만큼 항일 운동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6형제는 고되고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형제들의 2세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이 과정에서 몇몇이 목숨을 잃었고 첫째 이건영은 선산을 돌보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와 일제 감시 속에 살다 1940년 눈을 감았다.


인사이트우당 이회영 선생 / 사진 제공 = 서울시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아 독립운동을 위해 썼던 둘째 이석영은 두 아들을 먼저 보낸 뒤 1934년 상해에서 굶주려 생을 마감했다.


셋째 이철영은 1925년 병사했고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이회영은 1932년 뤼순 감옥에서 옥사했다.


막내 이호영마저 독립운동 중 북경에서 실종됐고 오직 다섯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해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보다 위태로웠던 시대. 부와 권력을 쥐고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음에도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이들의 희생은 자유 대한민국의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