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내가 베이비박스를 만들었지만 지금 베이비박스를 없애는 운동을 하고있습니다"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동네로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 한 켠에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님
이 자그마한 교회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생명들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는 기적이 일어난다.
몇 사람들은 이곳을 '아이를 버리는 곳'이라고 부르지만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는 이 박스를 '생명의 박스'라 부른다.
◆ 열매를 맺는 생명의 박스

지난 2007년, 장애를 갖고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생선박스에 담겨 교회 앞에 버려졌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를 안고 이종락 목사는 생각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자격있는 사람이 아닌, 먼저 본 사람이 해야한다'.
그렇게 시작된 베이비박스는 지금까지 모두 '1388명'의 갓 태어난 아이들을 품었다.
아이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태어났건 이종락 목사가 아이를 두고 가는 엄마들을 만나면 꼭 해주는 말이 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를 출산해서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것, 참 잘 했다. 엄마로서 최후의 방법을 네가 다 했다"
질책이 아닌 따뜻한 위로와 칭찬을 들은 미혼모들은 이 목사와 치유의 시간을 보내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나중에 꼭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후 어린 엄마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교회에서는 크고 작은 지원을 이어가고 지금까지 30%의 아이들이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이 목사는 이를 두고 엄마들의 눈물로 거둔 주사랑공동체의 ‘열매’라 말한다.
◆ 안 하면 안 되는 일
후원자들 덕에 마련할 수 있었던 기저귀
이 목사가 힘든 환경에서도 미혼모와 아이들을 10년 넘게 돌볼 수 있었던 건 생명 살리기에 동참하려는 이들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정작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베이비박스가 수차례 방송에 소개되며 시민들이 후원 문의를 할 동안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이 목사는 "오히려 2년 전까지만 해도 유기를 조장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며 "그들은 법과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뿐 생명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론 지금도 베이비박스가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해 이 목사는 "버리라고 만든 것이 아닌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 목사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베이비박스가 없어도 되는 나라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더 좋은 나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 목사는 '비밀 출산 제도'를 발의했다.
위기임신부터 출생까지 비밀을 보장하고 출산과 동시에 출생신고가 되도록 하는 이 법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과, 미혼모를 임신시킨 남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 내용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의 행복과 안전, 아이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베이비박스는 없어질 것이라 그는 굳게 믿고 있다.
◆ 사람들의 시선부터 바뀌어야 할 때

"가문의 망신"
이 목사는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국민들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10대 미혼모에 대한 시선을 조금 바꾸는 것이다.
미혼모가 되면 '집안 망신'이고 '가문의 망신'이 되는 한국에서 우리가 이제는 체면보다도 생명을 중시하고 사랑으로 축복할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혼모에게 '부끄러움'이 아닌 생명에 대한 책임과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임신은 신중하고 계획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잉태한 엄마와 아이는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점이다.
"생명의 탄생은 축복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주저주저 할 필요가 없죠. 이거는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