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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조선 왕조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였다

비운의 인물로 알려진 조선의 사도세자는 사실 수많은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인 '연쇄살인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사도'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세자가 죽인 중관, 내인, 노속이 백여 명에 이르고 낙형 등이 참혹하다"


조선 후기의 문신 박하원이 사도세자사건을 중심으로 쓴 '대천록(待闡錄)'에 적힌 글이다. 정조는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고치지 않았다.


256년 전 오늘인 1762년 음력 5월 21일, 조선 왕조 세자 이선이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아사. 그는 오늘날 사도세자로 불린다.


많은 이들에게 사도세자는 당파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뒤주 속에서 죽은 세자로 기억되고 있다.


가련하고 한 많은 이미지 탓에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사도'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혔다. 


"(내관 김한채의 목을 잘라) 그 머리를 들고 들어오셔서 내인들에게 보이시었다"


내관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친자식을 두 명이나 낳은 후궁인 경빈 박씨까지 죽였다. 


경빈 박씨를 죽일 때 사도세자는 곁에 있던 자신의 아들 은전군도 칼로 찔러 마당 연못에 버린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당시 은전군은 돌을 갓 지난 나이였다.


뒤주에 가두기 전 영조가 세자를 향해 뱉은 말 역시 "네가 왕손의 어미를 때려죽이지 않았느냐"는 비난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사도'


사도세자의 행각은 더욱 심각해졌다. 세자의 친모인 영빈 이씨까지 아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폐세자반교문에 따르면 영빈 이씨는 "아들에게 갔다가 거의 죽을 뻔했는데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공신력 있는 기록들도 모두 이를 증명한다.


우리에게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조선의 연산군도 세자 시절에는 왕실 웃어른을 극진히 모시는 등 모범적이었다. 사도세자의 광증은 유례 없는 케이스였다.


그런 사도세자에게 아버지 영조는 자결을 종용했다. 신하들이 이를 막아서자 뒤주에 가뒀다. 그렇게 아들을 죽인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사도'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시기의 정치사를 다룬 당대의 저서 '현고기(玄皐記)'. 


사도세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소론인 '현고기'의 저자 박종겸 또한 세자의 살인 행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박종겸은 현고기의 서문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 일은 당시에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이야기는 오늘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차마 말할 수 없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점차 잘못 알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