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화)

'5.18 민중항쟁' 희생자 안병하와 더불어 꼭 기억해야 할 이준규 경찰서장

인사이트SBS '궁금한이야기 Y'


[인사이트] 최해리 기자 = 단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다 세상을 떠난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연이 재조명됐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 Y'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당시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한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연이 전파를 탔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광주 거리는 '전두환 타도'를 외치는 소리들로 가득 메워졌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관과 기동대를 투입하고, 광주 시민을 폭동세력으로 몰며 이들을 강경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인사이트뉴스1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거세지자, 신군부는 시민을 향한 발포까지 지시했다.


당시 광주 지역 총책임자였던 故 안병하 경찰국장은 이에 불복하고 기동대에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이준규 목포 경찰서장은 안 국장과 함께 계엄군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에 앞장섰다.


사상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 기동대의 총기를 모두 회수했고, 이 서장은 회수한 총기를 모두 실은 채 목포를 떠나 가장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


인사이트SBS '궁금한이야기 Y'


이에 대해 목포경찰서 관할파출소 근무자였던 남성은 당시 이 서장이 떠나지 않았다면 목포 시민들도 광주와 다를 것 없이 많은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시민의 안전을 앞세운 그의 행동 덕분에 대량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항쟁이 끝난 후 이 서장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90일간의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됐다.


긴 시간 끝에 억류에서 풀려난 이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 하고, 자위권 행사를 소홀히 했다'는 오명을 쓰고 파면당하게 된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그로부터 5년 뒤 이 서장은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참된 죽음은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려지게 됐다.


이 서장의 유족들은 경찰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자 가족'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세상에 변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일을 가슴속에 묻어둬야 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그의 죽음을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