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에 쫓기는 광주 시민 집에 숨겨주며 목숨 걸고 5·18 참상 알린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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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헌틀리 목사, (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찍힌 장면 / 5.18기념재단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5·18 진실을 알리기 위해 광주로 뛰어든 파란 눈의 기자 피터가 등장한다.


피터의 실제 모델인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쿠키통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담은 필름을 넣고 일본으로 건너가 전 세계에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렸다.


먼 나라 한국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건 비단 힌츠페터 기자만이 아니다.


여기, 광주의 진실을 밝힌 또 한 명의 이방인이 있다. 바로 故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한국 이름으로는 허철선, 선교사인 그는 1969년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광주에 터를 잡았다.


5·18이 터졌을 때인 1980년에는 광주기독병원에서 원목실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광주에 살고 있던 자국민들에게 대피를 권고했지만 헌틀리 부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계엄군에게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갈 순 없었다.


헌틀리 목사가 할 수 있는 건 '기록'이었다. 철저히 고립된 광주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였다.


인사이트힌츠페터 기록 / 5·18기념재단


외신 기자들이 광주 일대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만행을 사진으로 찍어오면, 헌틀리 부부는 이를 사택 지하 암실에서 인화해 미국, 독일 등으로 보냈다.


때로는 계엄군에 쫓기는 시민들을 집에 숨겨주기도 했다. 외신 기자들도 헌틀리 부부 집에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틀리 목사는 병원에서 근무했던 만큼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생자 시신 사진과 X-ray 필름 등도 모두 챙겼다.


헌틀리 부부가 남긴 기록들은 5·18 참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두환 정부는 1985년 헌틀리 부부를 강제추방했다.


그럼에도 헌틀리 부부의 헌신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광주에서 목격한 광주의 참상을 직접 증언하며 계엄군의 만행을 낱낱이 알렸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한국과 광주를 사랑했던 파란 눈의 목사는 지난해 6월 미국 자택에서 영면에 들었다. 그가 남긴 유언, "나의 육신을 광주에 묻어달라"


아내 마사 헌틀리 여사는 남편의 유언을 받들어 5.18 민주화운동 38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헌틀리 목사의 유해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헌틀리 목사 유해는 광주 남구 호남신학대학교 선교사 묘지에 안장됐다.


이날 마사는 "(남편은) 한국에 대한 사랑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까지도 광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광주가 이제는 정의의 이름이 됐다"며 감회가 새로운 듯 눈시울을 붉혔다.


만약 헌틀리 부부가 없었다면 1980년 5월의 광주는 근현대사에 달리 적혔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에 시민들도 경건히 고개를 숙였다.


인사이트광주에 잠든 헌틀리 목사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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