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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팔만대장경' 훔쳐가려 수백번 도전하고도 실패한 이유

국보 제 32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오래전부터 탐냈던 일본과 이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있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국보 제32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 유산이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말기부터 이를 탐내던 일본의 만행에 의해 여러 차례 일본으로 보내지거나 사라질뻔한 위험에 처했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강으로 끝끝내 지켜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려 말부터 일본은 사신을 보내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했다. 조선 초기에 이르러 이는 더욱 심해졌는데, 일본은 각종 토산물을 바치면서 대장경을 달라고 애걸한다.


세종 때 일본 사신 2명은 '단식'까지 하면서 대장경판 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세종은 "우리에게 무용지물이니 그냥 내어주자"고 제안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철회하기도 한다.


결국 세종이 대장경판이 우리나라에 한 벌밖에 없어 줄 수 없다고 말하며 범자(梵字)의 밀교대장경판 등을 손에 쥐여주었지만, 이후 왜노 3명이 대장경판을 '약탈'하려 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불교를 숭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만대장경판을 탐냈던 일본은, 임진왜란 때 다시 한번 팔만대장경판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승병과 의병은 목숨을 걸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냈다.


인사이트뉴스1


이들은 가야산으로 접근하려는 왜군의 진로를 온몸으로 막아 왜군이 무릎 꿇고 철수하게 만들면서 해인사와 대장경을 지켰다.


이후 해인사에 7차례가 넘는 화재가 발생했지만 팔만대장경은 여전히 보존돼 있다.


팔만대장경에는 불교 경전 내용과 더불어 13세기 중엽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간기 및 지·발문과 최소 1,800명 이상의 각수가 새겨져 있다.


몇 세대에 걸친 일본의 계략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낸 선조들 덕분에 팔만대장경은 당대 역사와 불교문화·출판인쇄술·국문학 등 다양한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인사이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