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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쌩얼로 나가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는 거죠?"

"얼굴이 왜 그러냐"는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민낯의 여성들이 반기를 들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농담이다. 정말 아파서가 아니다. 당신이 민낯이기 때문이다.


농담을 던지는 사람은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하나다. 보기 좋게 화장을 해 달라는 것.


갓 스무 살이 넘어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혹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성에게는 특정한 굴레가 씌워진다. 화장이다.


인사이트뉴스1


지난해 9월 아르바이트생 노동조합 알바노조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외모 규정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아쿠아리움은 머리, 얼굴, 액세서리, 손, 발 등에 관한 항목 20여 개를 통해 직원의 옷차림과 화장법을 규정해놓고 있었다.


여기에는 남성도 포함됐으나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추가적인 스타일링이 강요됐다.


남성 직원은 면도 상태가 깨끗할 정도로 관리하면 됐다. 여성의 경우 눈썹 화장 및 붉은색 계열 립스틱 연출이 필수였다.


또 다른 대기업 계열사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 또한 외모 규정이 존재(지난해 기준)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사임당, 빛의 일기'


한국 사회에서 화장이 일종의 예의가 된 지는 오래다.


지난해 '나여기 여성 차별 캠페인'에 참여했던 광주광역시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A씨.


그는 "회사 규정이 자유 복장 출근임에도 업무평가 때 여성들의 화장 여부를 지적했다. 남직원들은 편하게 다녀도 지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20대 B씨 또한 "회사에서 '손님들이 뭘 보고 오겠냐'며 화장을 하고 다니라고 강제했다"고 밝혔다.


화장하지 않아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고백은 비단 A씨와 B씨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해당 캠페인에서 화장하지 않았다가 불이익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이에 반기를 든 움직임이 생겼다. '파데 프리'라는 신조어와 함께다.


'파데 프리(Foundation Free)'란 말 그대로 피부 화장품인 파운데이션에서 자유로워지자는 뜻이다. 파운데이션을 비롯, 모든 색조 화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일컫는다.


해외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명인들을 중심으로 민낯의 모습을 SNS에 공개하는 '노 메이크업 무브먼트(No Makeup Movement)' 운동이 펼쳐진 바 있다. 기네스 펠트로, 메간 폭스 등이 대표적이다.


SNS에 영어로 'No Makeup Movement'를 검색하면 수천여 개의 게시물이 뜬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제법 고무적이다.


인사이트Instagram 'gwynethpaltrow'


인간에겐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짧게는 10여 분, 길게는 1시간에 걸쳐 화장하는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할 수도 있어야 한다.


화장 대신 잠을 선택할 권리가, 가족과 간단한 티타임을 가질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민낯과는 별개로 그 사람 자체의 능력과 성품만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들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단순히 화장 여부가 아니다. 화장조차 의무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화장 그 자체를 즐기는 부류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요지는 이렇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


사회적인 시선에 갇혀 화장을 예의로 여기는 인식에서 벗어나기를, 그 누구든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허황한 꿈은 아닐 테다.


인사이트gettyimages


황효정 기자 hyoj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