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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여성 '두번 울린' 오달수의 대국민 사과

오랜 고민 끝에 어렵게 용기를 낸 한 여성의 고백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인사이트JTBC '뉴스룸'


[인사이트] 김나영 기자 =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어렵게 용기를 낸 한 여성의 고백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그의 용기는 '성폭력' 문제의 실상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하는 물꼬를 텄고,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협한 시선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성추행 경험을 폭로하며 사회 곳곳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성폭력 문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는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법조계에서 시작된 성추행 파문은 문화예술계와 정·재계, 연예계까지 급속히 번져나갔다.


피해자들의 폭로글이 쏟아져 나왔고,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 인사들이 가해자로 거론됐다.


그 과정에서 착한 남편이자 아빠라는 선한 이미지 뒤에 숨어있던 배우 조민기와 조재현의 성추행 전적이 밝혀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직접 성추행 사실을 자진 고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국내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가 더 당당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응원글이 이어졌다.


인사이트JTBC '뉴스룸'


글 아래에는 '나도 당했다'라는 의미를 가진 #미투(Metoo)와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WithYou), '나부터 동참한다'는 #미퍼스트(MeFirst)라는 해시태그가 달렸다.


지난해 말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미투 운동'이 국내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투 운동'은 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2017년 10월 15일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캠페인을 시작한 지 24시간 만에 약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하며 지지를 표했고, 8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MeToo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행 경험담을 폭로했다.


인사이트YouTube 'CBS Los Angeles'


그제야 우리는 주변에 성폭력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 또 소수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내 친구와 가족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숨어서 홀로 괴로워하던 피해자들은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던 이들은 스스로 잘못을 깨달았다.


'2차 피해'를 우려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성폭력 피해를 알린 여성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이제 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냐는 음해성 루머가 퍼져나간 것이다.


배우 조재현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한 배우 최율은 근거없는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살해협박'까지 당했다.


인사이트Instagram 'yul0917'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까지 발표했던 조재현은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폭로자'의 신원을 파악할 정보를 요구했다.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대비책으로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의 사과를 했을 뿐 진정성 있는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그간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피해자의 입을 막아왔다.


피해 사실을 쉽게 입증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놓기도 했다.


바로 어제(8일) 성추행 의혹에 '법정 공방'을 불사하며 자신의 결백함을 드러냈던 배우 오달수는 앞선 주장을 모두 뒤엎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인사이트KBS News

하지만 그의 '사과문' 또한 진정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깊고 쓰린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라는 회피성 발언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모든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전 일'로 치부된 사건이었다. 여전히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 있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 혹은 내부고발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확실히 이뤄질지에 대한 불안감, 벌을 받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 와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미투' 운동의 본질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2차 피해'를 확실히 막을 수 있는 방패막이 존재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직접 입을 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의 중심에 서서 이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이트(좌) 연합뉴스, (우) JTBC '뉴스룸'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딱 한 달이 지났다. 자칫 더 큰 이슈로 묻힐 수도 있었던 '미투 운동'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적어도 쉽게 불타올랐다가 곧 사그라드는 한 순간의 동요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법적인 보호와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때이다.


피해자가 입을 다물면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우리는 이들의 입을 막지 않아야 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미투' 운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약자가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선전포고기 때문이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김나영 기자 nayo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