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금)

"오늘은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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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오늘, 중국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 갓 태어난 남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詩)로서 일제의 억압에 저항한 민족 시인 윤동주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유순하고 눈물 많은 소년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인사이트(좌) 위키미디어, (우) 교보문고 


그리고 그가 태어난 명동촌은 일찍이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구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이에 윤동주는 자연스레 신학문과 민족의식을 접하며 성장하게 됐다. 


그는 숭실중학교 재학 시절이던 1935년 숭실중학생청년회에서 발행하던 '숭실활천'에 처음으로 활자화된 시를 발표했다.


이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한 윤동주는 조선어 강의와 역사 강의를 들으며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눈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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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고뇌와 번민을 풀어낼 길 없던 그는 시로써 일제에 저항하는 길을 택했다.


실제로 1939년 쓰인 그의 시 '자화상'에는 일본의 억압 아래서 식민지 지식인이 겪어야 하는 갈등이 짙게 배어 있다.


이후 오랜 번민의 터널을 지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반이었던 1941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엮는다.


'별 헤는 밤'과 '서시' 등 그의 대표작이 이 시집에 실려있다.


인사이트(좌) 영화 '동주' 스틸컷, (우) KBS1 '불멸의 청년 윤동주'


이처럼 여러 작품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던 그는 일본 도지샤 대학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형무소에서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윤동주의 죽음에는 의문점이 있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형무소를 찾았을 때 친구가 "일본이 정체불명의 주사를 놓았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윤동주가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인 '마루타'로 이용당했다는 주장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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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써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고자 했던 윤동주.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1990년 8월 15일 그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죽음 후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한편 최근 중국은 그의 생가와 묘지 앞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윤동주를 조선족 중국인으로 규정한 뒤 '동북공정'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사이트독립기념관 


그러나 한민족의 한(恨)을 가장 잘 담아낸 시인이자 독립 유공자인 윤동주가 '조선족 중국인'으로 소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사진 촬영한 곳에 기념비 세운 일본 '팬'들일본 교토(京都)의 한 시골 마을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기념비가 시인의 일본 '팬'들에 의해 세워졌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