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충북 제천에서 2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건물 안에 있던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바깥으로 탈출했고, 스포츠센터 일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런데 홀로 빠져나오기도 어려울 만큼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단 한 명의 동네 주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 '시민 영웅'들이 있다.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순간에도 한 줄기의 빛처럼 발현됐던 이들의 가슴 벅찬 인간미.
타인을 향한 희생과 소중한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용기 하나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시민 영웅들을 모아봤다.
1. 제천 화재건물에 갇힌 시민 구하려 '민간 사다리차' 끌고 온 청소업체 대표 이용섭씨
연합뉴스
사고 발생 당시 신고를 접수한 119 소방대가 7분여 만에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대원들은 2톤 LPG 가스통 폭발을 막기 위해 주변 불길을 먼저 진압하기 시작했고, 옥상에 있는 시민을 구조할 사다리차는 불법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진입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연기를 보고 큰불이 났다는 것을 감지한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외벽청소와 유리 설치를 하는 이양섭(53)씨였다.
이씨는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해 상황을 물었고, 난간에 사람들이 붙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씨는 서둘러 회사 사다리차를 몰고 와 8층 외벽에 사다리를 붙였다. 시커먼 연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일하면서 터득한 감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확히 사다리를 건물에 댈 수 있었다.
그렇게 이씨가 구해낸 주민은 총 3명. 이씨 덕분에 3명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2. 제천 화재건물서 사람들 도우며 15명 목숨 구한 할아버지 이상화씨와 중3손자 재혁군

MBC 뉴스
화재 당시 할아버지 이상화(69)씨와 손자 재혁(15)군은 4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불이 난 것을 알고 두 사람은 탈출구를 찾아 황급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2층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할아버지와 손자는 창문 너머로 갇혀 있는 여성들을 발견한다.
이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화분을 집어 창문에 던졌다. 창문이 깨지지 않자 아예 창문을 뜯어내고 여성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처 옷을 입지 못한 여성들이 머뭇거리자 등을 떠밀며 탈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합심해 구한 시민들만 15명에 이른다. 구조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목, 다리 등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 화재 사실 빨리 알려 남탕에 있던 손님 전부 살린 목욕탕 이발사 김종수씨
연합뉴스
화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 3층 남성 사우나에서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일해온 목욕탕 이발사 김종수씨 덕분이었다.
평소처럼 이발 손님을 받고 있던 김씨는 화재 비상벨이 울린 뒤 목욕탕 3층까지 유독가스가 밀려오는 것을 감지했다.
김씨는 주저 없이 손님 10여명에게 불이 났다고 외쳤고, 이들이 비상계단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혹시나 비상계단 위치를 몰라 헤매는 손님들이 있을까 걱정돼 이미 유독가스가 차오르기 시작한 3층에서 김씨는 5분 넘게 대피 유도를 했다.
손님들을 무사히 탈출시키고 뒤늦게 빠져나온 김씨는 연기 흡입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4. 제천 화재현장서 20여명 회원들 대피시켜 살려낸 헬스장 관장 이호영씨
연합뉴스
이호영(42)씨는 스포츠센터 4층과 5층에 위치한 헬스클럽 관장이었다.
그는 창문에서 까만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단번에 큰불이 났음을 알게 됐다.
이씨는 바로 "불이 났다"고 큰소리로 외치며 4층과 5층을 뛰어다녔다.
일부 회원들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운동을 하고 있자 이씨는 러닝머신 기계 전원을 아예 꺼버린 후 회원들을 모두 바깥으로 대피시켰다.
이후 이씨는 혹시 헬스클럽에 남아있을 회원들을 찾기 위해 남녀 샤워실, 탈의실, 화장실까지 전부 뒤졌다.
20여명의 회원들은 대부분 3층과 1층 사이 유리창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이씨가 탈출하려고 할 때는 이미 유독가스가 아래층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결국 이씨는 아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다행히 8층 레스토랑 난간에서 사다리차를 끌고 온 이양섭 대표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씨는 입원하고 있는 중에도 "유리 벽에 막혀 못 뛰어내린 사람들을 봤다.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며 눈물을 쏟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