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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기관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45분경 경기도 안산시 지하철 4호선 중앙역에서 20대 여성 A씨가 오이도 방면으로 향하던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역은 지난달 2일에도 한 남성이 투신한 곳으로 한 달 새 두 번의 투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또 지난 6월 용산역에서도 50대 남성이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선로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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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의 사연도 안타깝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겪은 기관사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선로에 뛰어든 B씨를 친 기관사 김모 씨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이후 자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급제동 브레이크를 손으로 조작하는 시늉을 한다"며 "또 승강장에 진입하다 열차를 타려고 선로 쪽으로 오는 사람들만 봐도 깜짝 놀란다"고 밝혔다.
이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던 30대 남성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맴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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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말처럼 한 번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의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2012년에는 선로 내로 들어온 사람을 불가피하게 치어 숨지게 했던 기관사 박모 씨가 9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후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등 고통을 토로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또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서울도시철도(지하철 5~8호선)에서만 소속 기관사 9명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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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함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망 사고에 항상 긴장해야 하는 기관사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
지난 2007년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서울도시철도 소속 기관사들이 일반인에 비해 7배나 많은 수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주요 우울증은 두 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4배 수준이었다.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의 경우에는 유병률이 일반인의 8배에 달했으며 이들 중 17.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서울시가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 4,0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역시 운전직군은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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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언제 눈앞에 사람이 뛰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달려야 하는 기관사들.
이에 "전 역에 스크린도어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관리 프로그램이 조금 더 체계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