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효창원7위 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주씨가 공개한 윤봉길 의사의 모습 / 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후손이 처음 공개한 수통폭탄 투척 당시의 사진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사단법인 효창원7위 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주(윤 의사 조카)씨는 도시락 폭탄을 투척한 뒤 일본군 손에 붙잡혀가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최초 공개했다.
해당 사진은 1932년 5월 1일 자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실린 것으로 윤 의사가 일본군에 연행됐을 당시의 삼엄함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윤씨는 "사진 속에 보이는 흰 물체는 일본군의 군도(칼)로, 삼엄한 경계 아래 연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거사 전 백범 김구 선생 앞에서 선서하는 윤봉길 의사의 모습 / 윤봉길기념사업회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투척용 수통 폭탄과 자결용 도시락 폭탄이 담긴 보자기를 들고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행사장을 찾았다.
주변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한 손에는 일장기를 들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 행사가 시작되고 공원 전체에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을 그때 윤 의사는 수통형 폭탄을 일왕에게 던진다.
이 폭탄으로 현장에 있던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과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가 사망했다.
윤봉길 의사 총살 당한 직후 운명하는 장면 / 윤봉길 기념사업회
또한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이 크게 다쳤다.
거사를 끝낸 윤 의사는 도시락 폭탄으로 자결하려 했으나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하고 만다. 이후 현장에서 곧바로 일본군에게 체포돼 무참히 구타를 당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윤 의사는 절개를 잃지 않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같은 해 12월 19일 윤 의사의 총살형이 집행되면서 25살의 나이로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