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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명을 더 죽였다"...교도소에서 '암수살인' 고백한 연쇄살인범의 편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암수범죄가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인사이트영화 '암수살인'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22년 경력의 베테랑 강력반 형사에게 어느 날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이두홍(가명). 그는 2010년 부산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살인범이었다.


느낌이 불길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었다. 시작은 이랬다.


"형사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용기있게, 배포있게 해보시겠냐"


그리고 그 안에는 그와 관련된 10건의 살인사건 목록이 장대하게 나열돼 있었다. 살인범은 관심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살인목록을 손에 든 김정수 형사는 이를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김 형사는 곧장 그가 복역 중인 교도소를 찾아갔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살인범의 말을 일일이 받아적었다. 살인범은 자신이 살해한 뒤 암매장 하거나 광안대교에 버린 사람이 여러명이라는 말과 함께 "내가 택시 일을 할 때 낙동강 갈대숲에서 없어진 여자들을 조합해 보세요"라며 수수께끼를 던지듯 정보를 제공했다.


11개의 살인 리스트를 꼼꼼히 체크해나갈수록 김 형사는 충격에 빠졌다.


살인범 이두홍이 지목한 자리에 실제 토막 난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


2003년 6월 실종된 이두홍의 동거녀도, 실제 부산 연산동에서 택시 승객으로 태웠던 20대 여성도 모두 시신으로 발굴됐다.


2012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조명한 '살인범' 이두홍과 강력반 형사의 진실게임은 철저히 숨겨져 있던 끔찍한 '암수살인'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암수범죄(暗數犯罪), 영어로는 Hidden Crime.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의미한다.


실제 발생했지만 범죄자가 자백하지 않는 한, 우연히 발견되지 않는 한 영원히 모를 사건들이기도 하다.


암수범죄는 사건 자체가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잡힌 통계도 없다.


대부분의 암수범죄는 그대로 묻히거나, 실종 처리되거나 훗날 사체가 발견돼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는 가혹한 운명에 처해진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13명을 살해하고, 마지막엔 살해할 사람이 없자 스스로를 죽였던 '희대의 살인마' 정남규 사건 역시 처음엔 암수범죄였다.


당시 그는 12살, 13살 남자아이 2명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을 자백하기 시작한다.


그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알지 못했을 살인이었다.


인사이트영화 '암수살인'


시체가 발견되어 수사를 시작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역시 비슷한 케이스다.


1986년 하의가 벗겨진 채 발견된 71세 여성을 시작으로 10년간 화성시에서만 10여 명의 여성이 살해됐으나,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암수범죄였던 이 사건은 시체가 발견되면서 수사는 시작됐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실체가 공개된 연쇄살인범의 사건 역시 <암수살인>이라는 제목의 실화를 모티브로 영화화 된다. 


본격적으로 암수범죄를 다루는 영화는 <암수살인>이 처음으로써 주지훈이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을, 김윤석이 살인범의 자백을 믿는 형사를 맡는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인자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때문에 '거짓'일지도 모를 작은 실마리에 매달려 매주 이두홍을 찾아갔던 김 형사처럼, 누군가의 집념과 관심이 없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암수 범죄'다.


어쩌면 암수살인의 가해자들은 완전범죄를 이뤘다는 희열감에 빠져 추가 범행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욱 잔인하고 끔찍한 수법을 동반한 채.


지금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범죄들이 당신의 주변을 도사리고 있다.


어두울 암(暗), 셈 수(數). 한자 그대로 형체를 알 수 없는 그 거무스름한 속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