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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회사원서 노벨상 수상자로…일본 장인정신의 '쾌거'

그는 자신이 회사 재직 중 청색 LED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미국 유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오가와 노부오(小川信雄, 2002년 사망) 니치아 창업자에 대해서는


 나카무라 교수 "분노는 나의 힘…일본엔 진정한 연구자유 없어"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60)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연구 역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기술'의 저변을 보여준 장인정신과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한우물을 파는 일본인 특유의 연구 자세 때문이다.  

8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카무라 교수는 도쿠시마(德島)현 시골의 한 평범한 회사인 '니치아(日亞)화학공업' 연구원으로 일하던 1993년 청색 LED의 실용화에 성공했다.  
 
그가 1979년 입사했던 니치아화학공업은 TV 브라운관 등에 쓰이는 형광체를 제조하는 종업원 200명 정도의 회사였다. 

입사 초기의 10년 정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카무라 교수는 당시 연필 하나를 사는데도 과장 결재가 필요했을 정도로 연구비 등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연구에 몰두했으나 개발한 제품은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하고 그만두자'는 특유의 반골정신으로 88년 회사 사장과 담판, 연구 대상을 청색 LED로 바꿨다. 

그는 고가의 실험 장치도 부품을 조달해 전부 직접 만들었다. 중간에 회사가 '연구 중지'를 통보했지만 응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한 끝에 39세의 나이에 청색 LED 개발의 위업을 일궈냈다. 

그는 그 후 다니던 회사에 1999년 연구소가 설립돼 소장으로 임명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연구를 하고 싶었으나 온종일 소장으로서 결재 도장을 찍는 일이 싫어서였다. 결국 그는 퇴직금 없이 니치아공업을 퇴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가 됐다. 

일본에서는 2002년 박사학위도 없는 평범한 학사출신의 민간 기업 회사원이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씨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바 있다.

나카무라 교수는 청색 LED 개발의 `산실'이었던 니치아공업을 상대로 200억 엔의 `발명 대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쿄지방법원은 2004년 청색 LED 발명 가치를 약 600억 엔으로 산정, 회사 측에 나카무라 교수가 청구한 금액을 전부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이 소송은 그 후 회사 측의 항소를 거쳐 회사 측이 8억4천만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화해가 성립됐다.

나카무라 교수는 7일(현지시간) 소속 학교인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조국 일본의 연구 풍토에 대해 "미국에서는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지만 일본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자신이 2000년부터 교수 생활을 하는 미국의 연구 토양에 대해 "일본과 다른 점은 연구의 자유가 있다는 점"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가기 전 직장인 니치아화학공업에서의 기억에 언급, "회사의 상사들이 나를 볼 때마다 '아직 퇴사하지 않고 있느냐'고 했고, 나는 분노에 떨었다"며 "분노"가 연구 성과의 원동력이었다고 소개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회사 재직 중 청색 LED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미국 유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오가와 노부오(小川信雄, 2002년 사망) 니치아 창업자에 대해서는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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