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패션 매장에 등장하고 감자칩은 야구장으로 향했다. 식품기업들이 본업인 먹거리를 넘어 패션과 스포츠 등 문화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취향과 일상에 파고들어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려는 전략이다.
오사카 무신사 팝업부터 야구장까지... 소비자의 일상으로 파고든 K푸드
농심은 최근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손잡고 일본 오사카에서 K패션과 K푸드를 결합한 체험형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오는 8일까지 열리는 '무신사 오사카 팝업스토어 2026'에 신라면 브랜드 부스를 마련하고 현지 소비자들에게 신라면 툼바를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오사카 무신사 팝업스토어 내 신라면 브랜드 부스 모습 / 사진 제공 = 농심
농심은 국내에서도 스포츠와 식품을 결합한 마케팅에 힘을 싣고 있다. 2026 KBO 포스트시즌 기간에는 결승타를 기록한 선수에게 '오늘의 타격감상'을 시상한다. 포테토칩의 바삭한 식감과 야구의 결정적인 순간을 '타격감'이라는 공통 키워드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대형 안테나숍 '신라면 분식'이 대표적이다. 신라면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약 120평 규모의 이 공간은 국내외 팬들을 위한 거대한 체험 콘텐츠 장으로 꾸며졌다. 소비자는 17가지 면과 스프 등을 조합해 자신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진이 인쇄된 세상에 하나뿐인 커스텀 라면 패키지까지 제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해외 수출용 신라면 제품을 맛볼 수 있는 미식 존, 티셔츠와 키캡 등 브랜드 굿즈를 선보이는 팝업 공간을 통해, 라면을 먹는 일상적인 행위를 힙한 라이프스타일 문화 체험으로 확장했다는 평을 받는다.
하이브 인디아 팝업 파크 '신라면 분식' 부스 / 사진 제공 = 농심
해외에서도 이 같은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지난 9월 인도 주요 4개 도시(첸나이, 콜카타, 찬디가르, 코치)에서 열린 K컬처 행사 '하이브 인디아 팝업 파크'에 신라면 분식 부스를 마련했다. K팝에 관심이 높은 현지 소비자들이 음악과 함께 한국의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한 것이다. 패션과 스포츠에 이어 음악까지 소비자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브랜드와 연결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략은 신라면의 글로벌 시장 확대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신라면 브랜드 매출 1조5400억원 가운데 해외 매출은 약 1조150억원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농심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신라면을 단순한 한국 라면이 아닌 일상에서 즐기는 K컬처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롯데웰푸드와 KBO와 협업한 빼빼로와 꼬깔콘, 자일리톨 / 사진 제공 = 롯데웰푸드
이처럼 식품과 문화 콘텐츠의 접점을 넓히려는 움직임은 농심뿐 아니라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KBO 주요 구단과 협업해 각 팀의 마스코트와 디자인을 입힌 'KBO 에디션 빼빼로'를 선보이며 야구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SPC삼립 역시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협업한 팝업스토어를 통해 대표 겨울 간식인 삼립호빵을 젊은 소비자층에 새로운 방식으로 알렸다. 식품기업들이 패션과 스포츠 등 이종 산업과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맛·가격 넘어 '경험' 소비... 장기 팬덤 구축 노린다
식품업계가 이처럼 문화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소비 방식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제품의 맛과 가격뿐 아니라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과 이미지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다. 특히 자신의 취향과 경험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젊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이색적인 브랜드 체험이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종 산업과의 협업은 기존 식품 구매층을 넘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패션과 스포츠, 음악 등 각 분야가 보유한 팬덤을 잠재 소비자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익숙한 먹거리에 새로운 재미와 감성을 더해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감각적으로 바꿀 수 있어서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만들어진 신라면 분식 부스에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다. / 사진 제공 = 농심
팝업스토어와 한정판 굿즈 등 체험형 콘텐츠는 이러한 전략의 핵심 수단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경험한 뒤 SNS에 공유하도록 유도해 자발적인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K패션과 K팝을 통해 형성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K푸드 소비로 연결하는 통로로도 활용된다.
다만 문화 마케팅이 일시적인 화제성을 넘어 실질적인 매출과 장기적인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재미와 이색적인 경험을 앞세운 '펀슈머(Funsumer)' 전략이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실제 구매와 재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제품 경쟁력과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경쟁 무대가 식탁을 넘어 소비자의 일상 전반으로 넓어지는 가운데, 이색 협업으로 확보한 관심을 얼마나 지속적인 소비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향후 문화 마케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