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이 거센 파문을 일으키자 더불어민주당이 17일 공식 사과에 나섰다. 소방공무원 단체들의 반발과 국민의힘의 연일 계속되는 맹공 속에서 당사자인 추 지사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질적인 소방 재정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논란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추 지사는 소방재원 확충과 관련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답했다. 이어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도에 1조1000억을 잡아먹게 되고, 사업비만 5000억 가량"이라며 '빨대', '잡아먹는다' 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6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의 한 공장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경기도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관련 재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대부분 부담하고, 국고지원 비율은 오히려 줄어드는 제도적 모순을 지적하려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지자체 재정에 중대한 부담을 주는 불합리한 구조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장 소방관들의 반발은 거셌다.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등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목숨을 걸고 국민 안전을 지키는 현장 대원들의 헌신을 단지 '재정 부담'이나 '예산 잡아먹는 존재'로 치부했다는 비판이다.
국민의힘 역시 강도 높은 공세를 펼쳤다. 정희용 사무총장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이 재정을 잡아먹는 비용인 것이냐"고 꼬집으며, 지자체의 수장이 제도 개선 대신 현장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장이 커지자 추 지사는 16일 부천 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소방관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빨대 발언'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사과나 언급 없이 현장 방문 행보로 논란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부산 동구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6.10.16/뉴스1
결국 당사자 대신 민주당 지도부가 고개를 숙였다. 이용우 대변인은 17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소방 재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더라도, 위험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소방관들의 노고와 자부심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당 차원의 사과를 통해 소방관들의 자존심 상처를 인정하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민주당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국가직으로 전환된 뒤에도 인건비를 비롯한 소방예산은 여전히 지방재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국비 비중도 전환 초기 이후 다시 낮아졌다"며 "국가직 전환의 취지가 현장에서 실현되도록 재정과 처우의 과제를 세심하게 챙기고, 인력·장비 확충 및 근무환경 개선 예산 확보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제도적 문제점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지방비 부담이 과중한 현 구조의 불합리성을 인정한 것으로, 여야 모두 소방 재정 개편의 필요성에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소방공무원은 지난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공식 전환됐다. 지역 간 소방 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처우를 개선한다는 취지였으나, 인건비와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지자체가 떠안는 구조는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오는 2027년 소방 인건비로만 1조 1000억 원, 사업비로 5000억 원가량을 자체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어 사용의 적절성 논란을 넘어, 유명무실해진 '소방관 국가직 전환'의 근본적 재정 구조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권이 소모적인 공방을 넘어 실질적인 재원 확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