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철학자 한병철이 신작을 통해 현대인의 고립과 사회 해체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가 새롭게 펴낸 '존중 없는 사회'는 존중이라는 가치가 무너진 현대사회의 민낯을 시적이면서도 예리한 언어로 드러낸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체제가 사람들을 교묘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이 체제는 타자를 경멸하고 자기 자신마저 혐오하는 패배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존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돈과 권력을 향한 투쟁이 차지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이 사회 분열과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사진 제공 = 간디서원
그는 존중과 자존감, 사회적 유대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한다. 존중이 사라진 사회는 '분자적 내전'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가치와 이상, 본보기로 이루어진 수직적 질서는 이제 무너지고 있다. 수평적 세계에서는 '우뚝한 것'이 모두 잘려나간다.
사람들은 '자기실현'이라는 착각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 여기에 공동체의 안정과 신뢰를 보장하던 '권위'마저 무너지면서, 무수한 '자기 경영자'로 전락한 현대인들은 극심한 불안과 방향 상실에 시달린다.
이렇게 권위가 사라진 공백 상태는 포퓰리스트와 독재자의 출현을 부추겨 사회를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디지털 알고리즘은 대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새로운 체제로 자리 잡았다.
한병철이 드러내는 현실은 섬뜩하다. 그러나 그는 절망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존중에 기초한 공존의 비전, 그가 말하는 '우정의 정치학'과 정중한 거리 두기인 '아름다운 형식'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에게 존중은 단순히 좋은 덕목이 아니다. 야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