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킬로미터짜리 터널을 달리던 운전자들이 느닷없이 터널 천장에서 쏟아지는 무지개색 섬광과 함께 날카로운 새소리, 맹수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경보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는 일이 전국 곳곳의 장대 터널에서 벌어지고 있다.
별다른 사고 표지판도 없는 터널 중간 구간에서 갑자기 조명이 번쩍이고 스피커에서 낯선 소리가 울리자 "고장 난 줄 알았다"는 반응부터 "귀신이 나오는 줄 알았다"는 반응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혹스러움을 호소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하지만 이는 오작동이 아니라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 도로공사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각성 장치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고속도로 최면(Highway Hypnosis)'이라는 운전 중 의식 저하 상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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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일정한 속도로 오래 달리면 눈앞에 반복되는 벽면 무늬와 균일한 타이어 소음, 엔진음이 뇌에 단조로운 자극으로 누적된다.
뇌는 변화 없는 자극을 반복해서 받으면 각성 수준을 낮추는 쪽으로 반응하는데, 이때 운전자는 눈을 뜨고 핸들을 잡은 채로도 순간적인 의식 단절 상태에 빠진다. 전방을 보고는 있지만 뇌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상태로, 본인은 졸았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수 초간 '깜빡 운전'을 하게 되는 셈이다.
터널이 특히 위험한 이유
터널은 이 현상이 가장 쉽게 발생하는 구간으로 꼽힌다. 일반 도로는 가로수나 건물, 주변 차량 등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가 계속 바뀌지만, 터널 안에서는 좌우 벽면과 천장 조명이 끝까지 똑같은 패턴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외부 소음이 차단되면서 엔진음과 타이어 마찰음만 일정하게 들리는 환경이 더해져 뇌를 둔화시키는 조건이 겹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뉴스1
길이가 긴 터널일수록, 통과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도는 높아지며, 특히 심야·새벽 시간대나 장거리 운행 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진입하면 수 초 사이에 주행 차로를 이탈하거나 앞 차량과의 간격을 놓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도로공사 내부적으로도 긴 터널 구간은 추돌사고 발생 빈도가 평지 구간보다 높게 집계되는 지점으로 관리되고 있다.
무지개 조명과 새소리의 정체
이를 막기 위해 도로공사가 적용한 방식이 '강제 각성' 자극이다. 터널 천장이나 벽면에 설치된 조명은 평상시 백색이나 주황색 톤을 유지하다가 일정 구간마다 적색, 청색, 녹색이 파도처럼 번갈아 지나가는 패턴으로 전환된다.
사람의 눈은 색상이 급격히 바뀌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 동공이 수축하고 시신경이 다시 깨어나는 효과를 낸다.
여기에 더해 일부 구간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포식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낯설고 돌발적인 음향을 짧게 송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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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엔진음·풍절음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소리를 섞어 청각 피질을 자극함으로써, 조명 변화만으로는 깨어나지 못한 운전자의 각성 수준까지 함께 끌어올리려는 설계다. 색채 전환과 음향 자극을 동시에 쓰는 이유는 시각 자극만으로는 이미 최면 상태에 들어간 뇌를 완전히 되돌리기 어렵다는 현장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확대되는 졸음 방지 시설
이런 각성 장치는 장대터널을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적용 구간이 꾸준히 늘고 있다. 조명·음향 자극 외에도 터널 진입 전 구간에는 노면에 홈을 파 주행 중 차량이 지나가면 드르륵거리는 진동과 소음을 내는 요철 포장이 깔리고, 터널 내부 일정 간격마다 차로 방향을 시각적으로 유도하는 선형 유도등이 함께 설치돼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일부 구간은 운전자의 조는 듯한 머리 움직임을 감지해 경고 방송을 내보내는 영상인식 시스템까지 시범 도입된 상태다. 도로공사는 긴 터널일수록 진입부와 중간, 출구부 등 구간을 나눠 자극의 강도와 패턴을 다르게 설계하고 있으며, 사고 다발 구간으로 분류된 터널부터 순차적으로 설비를 확충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해외에서도 검증된 방식
이런 식의 복합 자극 설계는 국내만의 실험이 아니다. 유럽과 일본의 장대터널에서도 일정 구간마다 조명 색상을 바꾸거나 노면에 요철을 넣어 운전자를 깨우는 방식이 먼저 도입됐고, 국내 도로공사는 이런 해외 사례의 효과 분석 자료를 참고해 국내 터널 환경에 맞게 색상 전환 주기와 음향 세기를 조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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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밝기를 높이는 조명보다 색이 급격히 바뀌는 패턴이 각성 효과가 크다는 점, 저주파 소음보다 고주파·불규칙 음향이 주의력 환기에 효과적이라는 점 등이 설계에 반영된 세부 기준이다. 일부 구간은 설치 전후로 졸음운전 추정 사고 건수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검증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운전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대응은 단순하다. 장거리 운행 전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터널 진입 전 환기나 음악 볼륨 조절로 각성 상태를 미리 끌어올리는 것이 기본이다.
졸음이 느껴지는 단계라면 색채·음향 자극이 울리기 전에 이미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멈추는 편이 안전하며, 터널 안에서 조명이 번쩍이거나 낯선 소리가 들리면 이는 차량 이상이 아니라 각성을 유도하는 안전장치라는 점을 기억하고 속도를 유지한 채 정신을 다잡는 것이 권장된다. 도로공사는 올해 안에 사고 다발 터널 10여 곳을 추가 선정해 같은 방식의 조명·음향 설비를 순차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