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9일(화)

'메이플 플래닛' 흥행의 진짜 의미... UGC플랫폼이 바꾸는 게임산업

최근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IP 기반 샌드박스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 내 콘텐츠 '메이플 플래닛'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자 역시 지난 주말 직접 게임에 접속해 플레이해봤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틀 동안 무려 12시간 넘게 게임을 즐겼다.


메이플 플래닛은 현재 서비스 중인 메이플스토리가 아니다. 이른바 '빅뱅 패치 이전' 시절의 메이플스토리를 구현한 콘텐츠다. 과거의 맵 구조와 직업 체계, 몬스터 배치 등이 상당 부분 재현돼 있다.


인사이트


여기에 지나치게 불편했던 성장 구간과 낮은 보상 구조는 일부 개선해 현대 이용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헤네시스와 커닝시티, 그리고 잊고 있던 2차 전직관의 존재는 옛 추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구경만 했던 캐시샵 쇼핑을 통해 어른의 권력(?)도 누리며 즐겁게 게임을 이어갔다.


수많은 이용자가 즐기고 있는 이 '옛날 메이플'은 넥슨이 만든 게임이 아니다. 메이플스토리 월드 플랫폼 위에서 창작자들이 만든 이용자 생성 콘텐츠(UGC)다.


메이플 플래닛의 흥행은 단순한 복고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최근 게임업계가 UGC에 주목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로 볼 수 있다. 


인사이트사진 = 인사이트


실제 메이플스토리 월드는 국내 게임업계에서 가장 가시적인 UGC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700만명을 돌파했고, 창작자들의 연간 수익은 총 50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4% 증가했다. 수익을 창출한 창작자 수는 1만팀으로 늘어나며 전년 대비 5배 성장했다. 이 가운데 연간 수익 1억 원 이상을 기록한 창작자도 12팀에 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용자 수보다 창작자 생태계의 성장 속도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실제 수익까지 창출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게임사가 콘텐츠를 만들고 이용자가 소비하는 전통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이용자가 콘텐츠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인사이트넥슨의 메이플스토리 IP 기반 샌드박스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 홈페이지 


넥슨 역시 이러한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회사는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메월드 넥스트'를 올해도 운영한다. 메이플스토리 IP를 활용한 '메커톤'과 총상금 18억 원 규모 개발 콘테스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택티컬 커맨더스, 아스가르드, 에버플래닛 등 과거 자사 레거시 IP를 창작자들에게 개방하는 '프로젝트 리플레이'도 추진한다.


이는 게임업계에서 IP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게임 IP는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었다. 후속작이나 외전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UGC 시대의 IP는 창작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강력한 IP를 얼마나 잘 개방하고, 이를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창작자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비단 넥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 제공 = 넥슨사진 제공 = 넥슨


크래프톤은 대표 IP인 배틀그라운드를 UGC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이용자가 직접 게임 규칙과 로직, 오브젝트를 설계할 수 있는 시스템 'UGC 알파'를 도입했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올해 UGC 생태계를 본격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용자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제작 도구를 늘리고, 제작 환경 성능을 개선하는 한편 UGC 전용 공간도 신설해 접근성을 높일 예정이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올해 1분기 실적발표에서 "배틀그라운드 IP는 강한 팬덤과 서비스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플레이 경험이 축적되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추가 모드와 UGC도 지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게임사들이 이처럼 UGC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콘텐츠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가 콘텐츠를 만들고 이용자가 소비하는 전통적인 게임 산업 구조는 서비스가 장기화될수록 개발 비용은 늘어나고 콘텐츠 공급 부담도 커진다.


반면 UGC 플랫폼에서는 이용자들이 직접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플랫폼 내 즐길 거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이용자 체류 시간도 증가한다. 창작자는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은 다시 새로운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살아 있는 게임'이 꾸준히 제작되면서 생태계가 스스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인사이트크래프톤의 UGC 플랫폼 '오버데어' / 사진 제공 = 크래프톤


UGC가 지닌 잠재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입증됐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다. 두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한다. 플랫폼은 제작 도구를 제공하고 수익 모델을 구축해 창작 생태계를 키워왔다.


특히 로블록스의 올해 1분기 기준 일일 활성 이용자 수(DAU)는 1억 3200만명에 달한다. 2025년 3분기 기준 창작자 수는 350만명, 플랫폼 내 이용자 제작 체험 수는 700만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창작자 커뮤니티가 거둔 수익은 15억달러에 이른다.


국내 창작자들의 성장도 두드러진다. 2025년 4분기 기준 실제 수익을 창출한 한국인 창작자 수는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국내 창작자가 제작한 게임 가운데 누적 방문 수 100만회를 돌파한 작품은 1300개에 달하며, 이 중 약 500개는 최근 1년 내 100만회 이상 방문을 기록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국내 게임업계가 UGC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이용자가 소비하며, 창작자가 수익을 얻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게임의 수명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하나의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넥슨은 "과거에는 게임 IP가 보호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창작자와 이용자가 함께 성장시키는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크래프톤 역시 장기 수명 주기(PLC)를 갖춘 IP 구축 차원에서 UGC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메이플 플래닛을 플레이하면서 느낀 재미의 출발점은 분명 추억이었지만 흥행의 이면에는 단순한 향수 마케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과거의 메이플스토리를 다시 경험하기 위해 접속했지만 창작자가 만든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이플 플래닛의 성공은 '옛날 메이플'의 귀환이라기보다 강력한 게임 IP와 창작 생태계가 결합했을 때 어떤 가능성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에 가깝다. 게임업계가 UGC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미래의 경쟁력은 더 많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창작자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