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1일(목)

결혼 20주년에 찾아온 이별... '어르신 밥상' 지키던 60대 조리사, 6명 살리고 떠났다

노인복지회관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 어르신들의 끼니를 챙기느라 여행도 마다하던 60대 여성이 6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21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김옥희 씨(68)은 지난달 15일 전남대병원에서 양쪽 신장과 안구, 폐, 간을 기증했다. 김씨는 뼈와 연골, 혈관 등 인체 조직까지 함께 기증했다.


김씨는 지난달 9일 직장에서 일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남편 박천식 씨는 의료진에게 먼저 다가가 장기·조직 기증 의사를 전했다.


29681_3400759_1779324861939769352.jpg기증자 김옥희(왼쪽) 씨와 남편 박천식 씨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부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박씨는 "그냥 허무하게 아내를 보낼 수 없었다"며 "생전에 아내와 할 수 있으면 장기기증을 하고 가자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고 설명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김씨는 서울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 40대 중반에 남편과 만나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꽃을 기르는 것을 좋아해 집 앞 마당에 다양한 꽃을 심고 가꾸는 것이 취미였다.


요리에도 재능이 많아 음식 관련 일을 주로했다. 최근까지는 노인복지회관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며 어르신들의 식사를 책임졌다. 어르신들은 김씨의 뛰어난 요리 실력을 입을 모아 칭찬했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밝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렸지만, 정작 남편과 쌓은 추억은 많지 않았다. 박씨는 "작년에도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복지회관 어르신들의 식사 걱정에 끝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며 "여행 한 번 제대로 같이 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지난 14일은 두 사람의 결혼 20주년이었다. 박씨는 20년 전 결혼 앨범을 다시 펼쳐 들고 "그렇게 예쁜 사람인 줄 몰랐다"며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을 뒤늦게 전했다.


29681_3400759_1779324857946744115.jpg 기증자 김옥희씨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그는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통해 "다니엘라(세례명), 함께한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고생 많이 하게 해서 미안하고, 따뜻하게 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사는 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못했는데, 사랑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기증자 한 분 한 분의 결정 뒤에는 이처럼 깊은 사랑과 사연이 담겨 있다"며 "김옥희 님과 가족의 숭고한 결단이 생명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었듯, 이 이야기가 더 많은 분께 나눔의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