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해양 넘어 우주항공으로 향하는 한화
한화그룹의 방산 전략이 지상과 해양을 넘어 우주항공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투 장비를 만드는 기업에서 발사체, 위성, 항공 플랫폼, 데이터 서비스를 함께 설계하는 종합 우주방산 기업으로 체급을 키우려는 흐름이다.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 준공한 제주우주센터 /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KAI 지분을 5.09%까지 늘리고,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꿨다. 연말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을 추가 매입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시장에서는 이를 한화의 우주항공 전략이 KAI와 맞물리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한화 측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경영 참여 계획은 검토 중"이라며 "향후 KAI 업무 관련 사항이 발생할 경우 회사, 주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충분히 감안해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회사의 경영 목적에 부합하도록 주주로서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AI 플랫폼에 한화 기술 더해지는 우주 밸류체인
KAI는 KF-21, FA-50, 수리온 등 전투기와 헬기 플랫폼을 개발·생산해온 국내 대표 항공 방산 기업이다. 무인기와 인공위성 분야에서도 사업 기반을 갖췄다.
KAI 우주센터 전경 / 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과 우주 발사체 핵심 부품, 한화시스템은 항공전자, 레이더, 위성 제조, 영상·데이터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다.
KAI가 항공 플랫폼을 맡고, 한화가 엔진·항전·센서·무장·위성 기술을 더하는 방식으로 협력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전투기와 헬기 수출에 레이더, 무장, 정비, 성능개량, 위성 데이터 서비스를 함께 묶는 장기 운용 패키지가 가능해진다.
단일 무기 판매에서 통합 솔루션 경쟁으로 넘어가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한화-KAI 협력은 K-방산의 다음 성장 축이다.
한화그룹이 방산 분야만큼이나 공을 들이고 있는 우주항공 분야에서의 그림도 더 커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와 엔진을, 한화시스템이 위성과 데이터 서비스를, KAI가 항공기 체계와 위성 개발 역량을 맡으면 발사체-위성-데이터-서비스로 이어지는 우주 밸류체인이 완성된다. 발사체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위성 제조와 데이터 서비스까지 수익 구조로 연결할 수도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8일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를 방문, 해상도 15cm급 'VLEO UHR SAR 위성'의 실물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한화그룹
이 구상은 스페이스X 모델과 닮아 있다.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를 넘어 스타링크 위성망을 통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며 우주산업의 판을 바꿨다.
한화가 그리는 방향도 발사체와 위성, 항공 플랫폼, 방산 서비스를 하나의 산업 체계로 묶는 데 있다.
개별 무기 수출 넘어 통합 솔루션 경쟁으로
현대전의 변화도 한화의 우주 확장 전략에 힘을 싣는다. 전장은 지상, 해상, 공중을 넘어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넓어졌다.
통신위성, 정찰위성, 드론, 무인기, AI 기반 지휘통제체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주 기반 통신망과 데이터 인프라는 전장의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서 한화-KAI 협력론을 국내 방산 시장의 단순한 지분 경쟁이 아닌 산업 전체의 규모를 키우는 전략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5월 3차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의 모습.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부터 항우연과 함께 누리호 체계종합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는 지상·해양 방산과 발사체·엔진에 강점이 있고, KAI는 항공기 체계 개발과 생산에 특화돼 있어 글로벌 방산·우주항공 시장을 겨냥한 체급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국 방산은 이제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K9 자주포, 천무, FA-50, KF-21 같은 개별 무기체계 수출을 넘어 발사체, 위성, 항공 플랫폼, 데이터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경쟁력이 필요해졌다. 방산과 우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중이다.
한화-KAI 협력론은 K-방산이 하늘과 우주를 향해 체급을 키우는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한화의 확장 전략과 KAI의 항공 플랫폼 역량이 맞물릴 경우, 한국에도 민간 주도형 우주방산 기업의 윤곽이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