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계열사 4곳을 통해 47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롯데렌탈 매각이 다시 가격 협상 국면에 들어간 시점과 겹친다. 다만 이를 곧바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단선적 조달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롯데가 최근 비주력 자산 정리와 함께 보유 부지 개발, 계열사 간 자산 재배치까지 병행하고 있어서다.
1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 호텔롯데, 롯데지알에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30일 사모 방식의 30년 만기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총액은 4700억원이다. 롯데지주가 1500억원, 호텔롯데가 2200억원을 조달했고 롯데지알에스와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각각 500억원씩 발행했다. 롯데지알에스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영구채를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건도 가볍지 않다. 롯데지주는 1000억원과 500억원으로 나눠 발행했고 콜옵션 시점은 각각 2027년 6월 30일, 2028년 3월 31일이다. 금리는 5.0%, 5.35%다. 호텔롯데는 2200억원을 5.793%에 조달했고 롯데지알에스와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각각 6.307%, 6.283% 금리로 500억원씩을 끌어왔다. 두 회사의 콜옵션 시점도 2028년 9월 30일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시점은 예민하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최근 롯데그룹과 롯데렌탈 인수 가격을 다시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SK렌터카 지분 전량 매각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거래가 한 차례 막힌 뒤 다시 조건을 조정하는 흐름이다. 어피니티는 당초 롯데렌탈 주식을 주당 7만7115원에 인수하기로 했지만, 현재는 인수 구조 변화에 따라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롯데가 자금 대응 수단으로 영구채만 꺼내든 것은 아니다. 롯데는 보유 자산 가치가 약 50조원에 이르는 유휴 용지를 활용해 아파트와 복합쇼핑몰 등을 직접 개발하고, 이를 통해 그룹 전반의 현금 흐름을 개선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의 재무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유휴 부지 개발을 통해 계열사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롯데물산과 롯데건설은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롯데물산은 지난달 31일 롯데칠성음료가 보유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5가 일대 토지와 건물을 2800억원에 매입했다. 롯데칠성은 이번 자산 매각을 재무건전성 확보와 미래 투자 재원 마련 차원으로 설명한다.
롯데는 올해부터 보유 부지를 순차적으로 개발해 1~2년 내 최대 4~5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반기에는 서초동 물류센터 부지에서 약 4조원 규모의 복합개발이 거론되고, 상암 롯데몰과 영등포 공장 부지 등도 개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 / 인사이트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롯데렌탈 매각도 단순히 현금을 만들기 위한 거래로만 보기는 어렵다. 비주력 자산 정리라는 성격이 더 짙고, 영구채 발행 역시 그와 별개로 자산 재배치와 개발 사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복합적 재무 전략의 한 축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래가 늦어지거나 가격이 낮아지면 들어오기로 했던 현금 규모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호텔롯데의 2200억원 조달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다만 최근 롯데의 움직임을 보면, 영구채 발행만으로 그룹의 자금 사정을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규모 보유 부지 개발과 자산 유동화, 계열사 간 자산 재배치가 함께 진행되고 있어서다. 향후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 롯데건설은 시공 참여를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고, 그룹 전반의 자금 여력도 넓어질 수 있다.
관건은 롯데렌탈 거래가 어떤 가격과 조건으로 마무리되느냐다.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거래가 성사되면 롯데는 비주력 자산 정리와 현금 확보를 동시에 일정 부분 해낼 수 있다. 반대로 협상이 길어지면 영구채 조달 부담은 더 부각된다. 매각과 영구채, 부지 개발을 동시에 돌리는 롯데의 재무 전략이 어떤 순서로 현금화되느냐가 그 다음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