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단순한 질병 예방을 넘어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20일 발표되었습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레너드 데이비스 노인학 대학원 연구팀은 '건강과 은퇴 연구' 데이터를 활용해 지난 2016년 기준 70세 이상 고령자들의 대상포진 예방접종 효과를 분석했습니다.
건강과 은퇴 연구는 50세 이상 성인 2만여 명을 2년마다 추적하는 미국의 대규모 장기 조사 프로젝트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건강 상태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후에도 백신 접종군이 비접종군보다 생물학적 노화가 더디게 진행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노인학 분야 권위지인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log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에 게재되었습니다.
대상포진은 어린 시절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 저하 시 재활성화되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수두를 앓은 거의 모든 사람의 체내에 평생 존재하며, 주로 50세 이상이나 면역저하자에게서 통증성 수포와 함께 심한 증상을 보입니다.
연구의 제1 저자인 김정기 USC 부교수는 "백신이 급성 감염 예방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최근 연구들은 대상포진 백신이나 독감 백신 같은 성인용 백신이 치매나 신경 퇴행성 질환 위험 감소와도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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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이 약 28만 명의 노인을 7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의 치매 발병률이 20% 낮다는 연구 결과를 작년 4월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 신경과학연구소의 스테파니아 마지 박사는 지난해 10월 '에이지 앤 에이징' 학술지에 대상포진,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백신이 노인의 치매 발병 위험을 각각 24%, 13%, 36% 낮춘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생물학적 노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7가지 지표를 활용했습니다. 염증 수준, 선천면역, 적응면역, 심혈관 기능과 혈류 변화, 신경 퇴행, 후성유전학적 노화, 전사체 노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실제 나이 대비 생물학적 노화 진행 정도를 평가했습니다.
분석 결과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들은 염증 수치가 더 낮았고, 후성유전학적 노화와 전사체 노화가 더 느렸으며, 전체 생물학적 노화 점수도 더 낮게 나타났습니다.
김 교수는 "만성적인 저강도 염증은 심혈관 질환, 노쇠, 인지 저하 등 여러 노화 관련 질환의 주요 원인"이라며 이를 '염증성 노화'라고 명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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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차단함으로써 백신이 배경 염증을 줄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더 건강한 노화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백신의 생물학적 노화 지연 효과가 수년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혈액 검사 4년 이상 전에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도 비접종자보다 후성유전학적, 전사체, 전체 생물학적 노화 속도가 평균적으로 더 느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공동 저자인 에일린 M. 크리민스 교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연구는 백신이 단순히 급성 질환 예방을 넘어 건강한 노화 전략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로 진행되어 백신이 노화를 직접 늦춘다는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으며, 연관성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한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