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월)

"쓰던 거 분실해도 '새것 가격' 내"... 동원F&B, '냉장고 갑질'하다 공정위에 혼났다

대리점 냉장고 하나를 두고도 '책임의 무게'는 크게 갈릴 수 있습니다. 오래 쓰다 낡은 장비라 해도, 분실되면 새것 값 전부를 물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동원F&B의 이런 계약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동원F&B가 대리점에 냉장·냉동 장비를 임대하거나 광고물이 부착된 장비를 지원하면서, 훼손·분실 시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지도록 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동원F&B는 참치통조림과 조미김, 유제품, 만두 등을 생산해 대리점에 공급하면서 2016년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냉장고와 냉동고 등 장비 임대 계약을 체결해 왔습니다. 문제는 대리점이 장비를 훼손하거나 잃어버릴 경우, 사용 기간이나 감가상각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장비 구입가액 전액을 배상하도록 약정한 점입니다.


동원에프앤비 식품과학연구원. 사진 동원에프앤비동원F&B 식품과학연구원 / 사진제공=동원F&B


또 해당 장비에 자사 브랜드 광고물을 부착하고 광고비 명목으로 장비 구입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광고판촉 계약도 함께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광고물이 훼손·분실되거나, 이를 14일 이내에 수리하지 않으면 이미 광고가 집행된 기간이나 장비 사용 기간과 관계없이 광고비 전액을 반환하도록 한 조항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공정위는 이 같은 계약 구조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대리점에 불이익을 준 행위로, 대리점법 제9조 제1항과 구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해당 조항을 근거로 실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고, 조사 착수 이후 문제 조항을 개정해 대리점들과 변경 계약을 체결한 점이 고려돼 과징금 대신 시정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번 조치는 동원F&B에 대한 첫 제재는 아닙니다. 동원F&B는 과거에도 대리점·거래처와의 계약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져 공정위의 조사와 시정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판촉비 부담이나 계약 조건을 둘러싼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에서는 '관행 점검' 차원을 넘어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공급업자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앞세워 대리점에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번 시정명령 역시 특정 기업을 넘어, 식품·유통 업계 전반에 계약 관행을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동원그룹의 지주회사인 동원산업이 식품 핵심 계열사인 동원F&B를 자회사로 품으면서 참치를 뗀 글로벌 K-푸드를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다. 사진은 동원그룹 사옥. /동원산업동원그룹 사옥 / 사진제공=동원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