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우체국에서 예금·대출 등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금융당국이 관련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승인하면서, 시중은행의 대면 영업점 감소로 불편을 겪어온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정례회의에서 4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 우정사업본부, 그리고 9개 저축은행(동양·모아·센트럴·오성·SBI·인천·제이티친애·진주·한성) 등 14개 기관의 '은행 업무 위탁을 통한 은행대리업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신규 지정했다고 21일 밝혔습니다.
이번 지정의 핵심은 은행 고유 업무로 분류돼 온 예·적금, 대출, 이체 등 환거래 일부를 은행이 아닌 제3자가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입니다. 그동안 은행법상 예금·대출 계약 체결과 해지는 제3자 위탁이 제한됐지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서 우체국과 저축은행이 은행을 대신해 현장 고객 접점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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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수탁기관이 은행의 모든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객 상담, 거래 신청서 접수, 계약 체결 등 대면 창구 업무를 맡고, 대출 심사와 금리·한도 산정, 최종 승인과 자금 집행 등 핵심 판단은 은행이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금융위는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은행 점포 감소에 따른 접근성 저하를 들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국 은행 점포 수는 2015년 말 7313곳에서 2020년 말 6454곳, 2023년 말 5794곳으로 줄었고, 지난해 말에는 5683곳까지 감소했습니다.
금융위는 "소비자는 은행 업무를 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이 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어 편익이 커질 것"이라며 "수탁기관이 2개 이상의 은행과 제휴할 경우 예금·대출 금리를 대면으로 비교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신용대출을 예로 들면, 수탁기관이 상품 설명과 상담을 진행하고 신청서를 접수한 뒤 고객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면, 은행이 대출 심사와 금리·한도 산정을 거쳐 조건을 통보합니다. 이후 은행이 대출을 승인하고, 수탁기관이 약정서를 받아 은행에 송부하면 은행이 대출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했습니다. 은행대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책임 등 법적 책임은 원칙적으로 위탁자인 은행에 귀속되도록 계약을 통해 명확히 했고, 은행이 은행대리업을 이유로 인근 영업점을 폐쇄하는 행위도 제한해 점포 축소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로 했습니다.

은행대리업 시범운영은 내년 상반기 중 전국 20여 개 총괄우체국에서 4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과 정책서민금융상품부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됩니다. 시범 지역은 지역 안배와 금융 접근성 개선 필요성을 고려해 우정사업본부와 협의 중이며, 우체국의 은행 예금상품 판매와 저축은행을 통한 서비스 제공은 운영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금융위는 금리인하 요구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차주 대신 신청하는 방안도 혁신금융서비스로 승인했습니다. 금융위는 "시범운영을 통해 소비자 편익과 보완 사항을 충분히 점검한 뒤, 은행대리업의 정식 도입을 위한 은행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