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금)

해킹 사건 뒤 갈팡질팡하는 KT... 차기 대표 선정 과정 정당성 '흔들'

해킹 사건 수습이 끝나지 않은 KT가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 국면에서도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부의 KT 정보침해 사고 조사 결과가 연내 발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이 참여한 민관합동조사단 결론에 따라 규제 리스크와 대외 신뢰 회복이 새 경영진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시점에 대표 선임 절차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겹치며, 조직 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KT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박윤영 전 기업부문장(사장)을 차기 CEO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박 후보는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 절차를 밟게 됩니다. 그런데 후보 확정 바로 다음 날인 12월 17일, KT는 조승아 사외이사가 상법 제542조의8 제2항에 따라 사외이사직을 상실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조 전 이사가 KT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대제철 사외이사를 겸직해 이해상충 소지가 발생했다는 취지입니다. 공시상 퇴임일은 현대제철 사외이사 취임일인 2024년 3월 26일로 소급 적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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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는 이렇습니다. 조 전 이사는 2024년 3월 26일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취임했습니다. 당시 KT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었지만, 같은 해 4월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현대차그룹이 KT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상법은 최대주주 및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이 사외이사를 맡는 것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외부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조 전 이사는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가 된 시점부터 사외이사 자격을 잃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제는 KT가 이를 1년 9개월(약 21개월) 동안 사실상 방치했다는 대목입니다. KT는 이달 16일 2026년 정기주주총회 안건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결격사유를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7일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자격 상실을 공시했습니다. 대표 후보를 낙점한 직후 곧바로 '사외이사 자격 상실' 공시가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KT가 내부적으로 상당히 다급한 리스크 관리 국면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특히 "분기 보고서엔 나와 있었다"는 지점이 논란을 키웁니다. KT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와 분기보고서를 보면 '임원 겸직 현황'란에 조 전 이사가 현대제철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2024년 4분기, 2025년 2분기 보고서 등에도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겸직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더 문제로 지목되는 건 같은 보고서의 '임원 현황'란입니다. 이 항목에는 조 전 이사와 최대주주의 관계가 '관계없음'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겸직 현황과 최대주주 관계를 교차 점검했다면 결격 가능성을 비교적 이른 시점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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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업계에서는 이사회 사무국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이사회사무국이 사외이사 자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주주 구성이 바뀌면 독립성 요건을 다시 점검하는 것을 사실상 관행으로 두고 있습니다. 


KT 역시 2024년 4월 최대주주가 바뀐 시점에 사외이사들의 계열사 겸직 여부, 특수관계인 해당 여부 등을 재점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항목 간 대조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담당 부서가 단순 입력에 그치고 검토를 놓쳤다면 내부통제 공백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 전 이사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간단치 않습니다. 조 전 이사는 결격이 발생했을 수 있는 기간 동안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평가및보상위원회, 이사후보추천위원회 활동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석률이 100%였고, 다수 안건에서 찬성표를 행사했습니다. 2024년 8월 13일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 합병 동의안, 2024년 11월 5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안건, 같은 달 KT와 KT넥스알 합병계약 승인안, 2024년 12월 26일 KT클라우드 자산 양도안과 '프로젝트 R' 추진안 등 굵직한 경영 안건들에 관여했다는 점이 거론됩니다.


가장 민감한 대목은 차기 대표 선임 과정입니다. 조 전 이사는 대표이사 후보군을 구성하고 육성하며 최종 후보를 선정해 이사회에 보고하는 권한을 가진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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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조 전 이사가 12월 16일 최종 면접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KT는 결격사유를 16일에 발견했고, 17일 공시했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최종 면접 하루'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 있습니다. 후보군 압축과 검증, 평가 기준 설정 등 절차 전반에서 조 전 이사가 위원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절차적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대표 후보 낙점 직후 곧바로 자격 상실 공시가 나온 흐름을 두고, 선임 절차를 둘러싼 이의 제기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습니다. 


"결격 사유가 있었던 이사가 참여한 이전 결정은 모두 무효"라는 주장으로 논쟁이 번질 경우, KT가 대내외적으로 혼선을 최소화하려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KT는 법적 효력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KT 관계자는 "겸직 시점 이후 개최된 이사회·위원회 의결 사항을 점검한 결과 이사회 및 위원회의 결의는 그 결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KT 이사회 규정 역시 "재적이사 과반수 출석과 출석이사 과반수 찬성"을 결의 요건으로 두고 있고, 조 전 이사를 제외해도 정족수와 찬성 요건은 충족된다는 설명입니다. 즉 결격 이사의 참여 사실만으로 이사회 결의 자체를 곧바로 무효로 보기 어렵다는 법무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다만 법적 유효성과 별개로, 대표 선임 과정의 신뢰가 훼손됐다는 비판은 남습니다. 


KT새노조 등은 사외이사 독립성 문제를 거론하며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해킹 사태 수습으로 빠른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내부통제 공백이 드러난 지배구조 이슈가 겹치면서 새 CEO 출범 초기부터 불필요한 잡음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이사회 책임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이를 새 판을 짜는 도구로 악용해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KT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사외이사 독립성 점검 체계와 이사회 사무국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문이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