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세계 랭킹'은 국가가 아니라 점포 하나의 체력으로 갈립니다.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런던의 해러즈, 도쿄의 이세탄 신주쿠가 상징이 된 이유도 같습니다. 도시의 관광 동선과 고소득층의 소비 습관을 한곳으로 끌어당겨, 점포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굳어진 사례들입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SKP, 난징 더지 플라자처럼 럭셔리만으로 매출의 천장을 밀어 올린 초대형 거점이 등장했고, 이들은 '점포 단위 매출'이라는 언어로 세계 리테일 시장의 판을 바꿔왔습니다.
이제 그 비교표에 서울 서초의 신세계 강남점이 올라와 있습니다. 올해 3조 5천억원의 매출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고 내년 목표가 4조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내 1위'라는 익숙한 수식이 아니라, '세계 주요 플래그십과 같은 단위'로 비교 가능한 점포가 됐다는 뜻입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 사진=신세계백화점
국가별 공시 관행이 달라 점포 매출을 깔끔하게 공개하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공개 수치가 잡히는 대표 점포들은 대체로 한 구간에 모입니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은 2023년 19억 유로(한화 약 3조 3천억원) 수준이 거론되고, 런던 해러즈는 지난해 매출이 약 4조 8천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본에서는 이세탄 신주쿠 본점이 FY2024 총매출 4212억 엔(약 4조 200억원) 규모입니다. 중국은 베이징 SKP(2023년 265억 위안, 약 5조 5700억원), 난징 더지 플라자(2024년 245억 위안, 약 5조 1500억원)처럼 200억 위안대 실적이 언급되는 초럭셔리 거점이 대표적입니다. 결론적으로 강남점의 3조 5천억원, 그리고 4조원 목표는 '세계적 백화점 몇 곳만 논의되는' 매출 단위로 들어가는 숫자입니다. 환율에 따라 환산값은 달라지지만, 이 정도 원화 매출이면 비교 프레임 자체가 글로벌로 바뀝니다.
강남점이 세계적인 이유는 규모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매출의 '재료'입니다. 럭셔리가 매출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파리, 런던, 도쿄에서도 같습니다. 강남점은 그 문법을 서울에서 완성해가는 케이스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매장을 키워서가 아니라,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객단가와 더 두꺼운 VIP 반복구매를 만들어낸 점이 핵심입니다.
신세계 관계자에 따르면 강남점은 명품 부문 매출이 전체의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곳에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주요 브랜드 외에도 루이비통 주얼리 전문 매장 등 국내 최초·유일 매장이 다수 입점해 있습니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 / 사진제공=㈜신세계
또 강남점은 매출 중 VIP(우수고객)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처음 절반(52%)을 넘긴 상황입니다. VIP 전체 매출은 8% 넘는 성장을 보였고, 신세계백화점 VIP 중 엔트리 등급인 레드(구매 금액 500만원 이상) 고객의 수가 10%가량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백화점은 넓힌다고 커지는 산업이 아닙니다. 좋은 브랜드를 더 많이 들여놓는다고 자동으로 숫자가 폭발하지도 않습니다. 진짜 승부는 같은 1평에서 얼마나 높은 단가를 만들고, 얼마나 깊은 충성도를 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간을 사는 고객'을 얼마나 붙잡느냐입니다.
외국인 매출이 빠르게 늘었다는 흐름까지 겹치면, 점포의 성격은 한 단계 더 바뀝니다. 매출이 경기와 판촉에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브랜드 밀도, VIP 구매력, 관광 수요가 맞물려 올라가는 구조라면 강남점은 더 이상 동네 백화점이 아닙니다.
관광 동선 위에서 기능하는 국제 소비 거점, 다시 말해 '국제 소비의 정류장'이 됩니다. 파리 오스만 거리가 관광객의 동선을 빨아들이고, 런던 나이츠브리지의 쇼핑이 도시의 상징으로 굳어졌듯, 강남점도 서울 한복판에서 같은 문법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 사진=신세계백화점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밀어붙여 온 '럭셔리 신세계'의 성적표는 결국 점포 매출로 귀결됩니다. 강남점이 3조 5천억원을 넘어 4조원을 바라본다는 건, 백화점이 가장 어려워하는 숙제인 "비싸게, 꾸준히, 흔들리지 않게 파는 구조"를 한국식 럭셔리 운영으로 풀어냈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조원은 상징적인 문턱입니다. 중국의 초대형 럭셔리 거점들이 먼저 치고 올라간 구간이지만, 그 벽을 두드리는 점포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강남점이 이 목표를 현실로 만들면 서울의 위상도 한 단계 달라집니다. 명품을 많이 사는 도시를 넘어, 명품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팔리는 좌표를 가진 도시로 분류되는 순간이 열립니다. 백화점 한 점포의 숫자가 도시의 격을 바꾸는 장면이, 강남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