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해를 앞두고, 국내 재계 '톱3' 총수들의 말하기 방식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 고환율 기조가 겹치면서 위기감은 공유되지만, 이를 조직에 전달하는 방식은 '먼저 말하는 리더십' '말을 아끼는 리더십' '두 갈래로 나눠 말하는 리더십'으로 나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년 메시지가 단순한 연례사가 아니라, 각 그룹의 경영 방식과 리더십 스타일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 것입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올해도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2026년도 신년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전달합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 뉴스1
LG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신년사는 지난해처럼 크리스마스 전인 오는 22~23일께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신년사는 영상으로 제작되며, 직원들에게 따로 공유될 예정으로 알려집니다. 촬영은 이달 초중순께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LG는 2022년부터 신년사를 연초가 아니라 연말에 전달해왔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다음 해의 방향을 미리 공유해, 구성원들이 '마무리'와 '준비'를 동시에 하도록 설계한 방식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구 회장은 그간 영상 신년사를 통해 고객가치 제고와 인공지능(AI)의 사업 적용, 중장기 전략 방향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해왔습니다. 메시지를 앞당겨 공유하고, 형식은 간결하게 하되 내용은 구체화하는 전략으로 읽힙니다.
반대로 삼성그룹은 공식 신년사를 내지 않는 기조를 올해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별도 신년사 대신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하는 비공개 만찬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내년 초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신년 사장단 만찬'을 합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 사장, 최주선 삼성SDI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참석해 이 회장과 저녁식사를 하며 신년 사업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6'이 현지 시간으로 내년 1월6일 개최되는 만큼 만찬은 그 전에 진행될 전망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뉴스1
1월 9일 만찬도 거론됩니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 자신의 생일에 사장단 만찬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상징성이 큰 날이기는 하지만 이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인 2023년부터 이 날에 사장단 만찬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이 회장은 사장단 만찬에서 공개적으로 신년사를 한 적은 없습니다. 비공개 자리에서 경영 환경과 방향성을 공유해왔습니다. 과거 그룹 차원의 대규모 신년하례식이 중단된 흐름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외부 메시지를 최소화하고 내부 결속과 실행 점검에 무게를 두는, '말을 아끼는 리더십'를 발휘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두 개의 자리'가 메시지 구조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SK그룹 회장 자격으로 그룹 구성원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경제계를 향한 신년사도 별도로 발표합니다. 그룹 내부를 향한 메시지와 경제 전반을 향한 메시지가 분리되는 셈입니다. 지난해 최 회장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계획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실행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차이를 두고 "누가 더 강하게 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 그룹이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 언어와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LG는 연말 선제 공유로 조직의 준비 시간을 앞당기고, 삼성은 공개 메시지를 줄이는 대신 내부 논의로 방향을 정리하며, SK는 그룹과 경제계를 동시에 상대하는 위치만큼 메시지를 역할별로 나눠 전달하는 흐름이 뚜렷하다는 평가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뉴스1